“엄마가 그러는데, 우리 땐 화장을 안 해도 예쁘대요.”
요즘 어른들도 그런 말씀을 하시나 보다.
물론 누구나 이때의 ‘예쁘다’가 어떤 의미인지 안다.
고등학생들을 가르칠 땐 자주 생각했다.
너희들이 봄이구나,
지금은 비록 입시에 찌들어 있지만
정말 좋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마흔이 될 무렵엔 이런 생각을 했다.
한 80까지 산다면… 나도 이제 늦여름이겠구나.
마흔하나에도 마흔둘에도 생각했다.
평균 수명이 좀 늘었으니
그래도 아직은 늦여름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마흔다섯을 넘고 나니
이제 초가을에 들어섰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말을 믿어? 요 녀석들아, 화장을 하는 게 예쁘지.
특히 늘 화장하고 다니던 사람은 학원 올 때도 꼭 하고 와.
어떻게 저를 못 알아보실 수가 있어요, 서운해요, 이러지 말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거 알지?”
이런 실없는 농담을 하며 아이들과 웃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까지가 나의 여름이었을까.
9월, 오늘은 딸아이의 생일인데 날씨가 참 좋다.
아내는 창밖을 보며 중얼거린다.
“이렇게 좋을 때 내가 애를 낳았구나.”
나도 옆에서,
“그러게, 이렇게 좋은 날이 일 년에 며칠 안 되지.”
가을이 이런 계절이구나.
연둣빛 새잎이 나지도 벚꽃이 만발하지도 않지만
세상이 온통 초록으로 뒤덮이지도 않지만
이렇게 높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그 며칠이 있는 계절
그러니 가을은 참 괜찮은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