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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진한 Jan 03. 2024

새벽 다섯 시 반

사십 년 가까이 살았던 집엔 작은 마당이 있고 대문 옆으로 보일러실이 있었다. 오랜 시간 연탄광이었던 보일러실은 마당 가득 화분을 가꾸던 노모의 창고로도 쓰였다. 겹겹이 쌓아 둔 화분들, 흙과 비료들, 전지 가위 따위의 잔짐들과 벽돌 몇 개, 그리고 이걸 다 언제 주워 왔나 싶어 서럽기까지 했던 수백 장의 비닐 봉투가 거기 있었다. 물론 오 년 전 어머니가 요양 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머니가 요양 병원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그 집은 몇 달 동안의 대청소를 한 뒤 월세를 주게 되었고, 벌써 세 번째 세입자가 들어와 살고 있다. 나 또한 결혼 후 그 집을 떠난 지 십 년이 다 되어 가는 것인데, 워낙 오래 살아서인지 지금도 가끔 그 집에 사는 꿈을 꾼다. 내가 왜 지금도 여기 사는 꿈을 꾸고 있지? 이런 생각을 꿈에서도 하며, 꿈을 꾼다.


어제는 그 집에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 사람이 없다.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는 몇 년째 병원에 누워 있고, 나는 이미 집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마당을 보는데, 도둑이었다. 무언가를 뒤집어 쓴 도둑이, 50대쯤 되어 보이는, 체구는 그리 크지 않은 도둑이 대문을 열고 들어와 보일러실로 들어간다.


도둑이야, 외치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소름 끼치게 떨리는 가슴으로 나는 마당으로 내려가 보일러실 쪽으로 간다. 부들거리는 손을 뻗어 무언가를 주워 담고 있는 도둑의 어깨를 잡아챈다. 도둑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뒤를 돌아본다. 뒤집힌 오른쪽 눈이 왼쪽 눈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크다. 도둑은 아무 말도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곳이, 당신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잠을 깨어 마음으로 울었다. 새벽 다섯 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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