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부엌살림
처음 로스쿨을 들어갈 때는, 딱 한 개씩 가지고 갔었다. 접시 한 개, 그릇 한 개, 컵 한 개, 등등. 그렇게 사는 삶은 외로웠고, 취업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2개씩, 혹은 4개씩 사기 시작했다. 언젠가 우리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일이 있지 않을까, 언젠가 그 사람들에게 밥을 해주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런 설레는 생각을 하며 이것저것 샀다. 모두 다 내 취향을 잔뜩 담아서.
그래서 여자 한 명이 사는 살림 치고는 부엌살림이 엄청났다. 나는 "바쁜 M&A 변호사 치고는" 요리를 잘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듣는데, 플레이팅이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즐겨 봤던 인테리어 잡지들에서 음식이 플레이팅이 되어있는 페이지들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저장해 놓았던 것 같다.
이렇게 내가 여태 모아놓은 것들을 보낼 생각을 하면, 한없이 아깝다가도, 한없이 홀가분해진다. 한 때 6불, 7불, 혹은 10불 넘게 주고 샀던 것들을 거의 하나당 2불로 팔고 있다. 워낙 싼 가격이니 거의 올리자마자 다 팔리고 있는데, 사실 이걸 주고 팔고 하려 만나는 시간이 굉장히 비효율적인데도 환경을 생각해서 그냥 확 버리지 못하겠다.
내일부터 다른 사람들의 주방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조금 아쉽긴 하지만, 여태 잘 썼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랜다.
비록 많이 팔더라도, 다음 아파트에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