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 책
보통 자취하는 사람들의 집에 가보면 책이 많지 않다. 대부분 사람들은 실제로 많은 책들이 부모님 댁에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봤던 책들이나 추억이 쌓인 물건들은 본가에 있다가 결혼할 때 주로 버려지거나 기부가 된다.
나도 한 때 "본가"라고 불리는 집이 라스베가스에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2003년부터 2019년까지 라스베가스에 살았고, 나도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 2009년까지 그 집에서 살았으며 대학교 다닐 때도 매번 그 라스베가스 집으로 돌아가서 물건을 쌓아놓거나, 대학교에 가지고 가거나 그랬다. 물론, 대학교를 졸업하며 축적된 짐은 고스란히 라스베가스 집에 있던 내 방에 쌓아놓았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2019년에 한국으로 들어가시게 되고, 라스베가스 집을 비우게 되었다. 2019년 2월, 그 집에서 엄청난 양의 짐을 버렸다. 중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CD들도 엄청 많이 버렸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까운 CD들이 몇 개 있다... 그 와중에 또 보아 2집이랑 4집은 들고 나왔고, god의 3집, 5집, 6집, 7집도 다 가지고 나왔다).
그렇게 짐을 버렸는데도, 라스베가스 부터 뉴욕으로 배송하게 된 박스만 해도 10개가 넘었다. 졸업앨범, 어렸을 때 썼던 다이어리, 차마 버리기 아까운 책들이나 추억이 깃든 물건들 등등.
그리고 다시 짐이 축적 되었다. 그렇게 짐을 버렸는데도, 뭔가 내 취향인데 세일까지 하는 물건은 무조건 사야 하는 욕구가 있었다. 책장 없이 살며 버티고 버티다, 실제로 뉴욕 생활 3년 차에는 큰 책장을 사버렸다.
그리고 언젠가 가지게 될 나의 집에 놓고 싶은 책들을 슬슬 모으기 시작했다. 남의 집에 거실에 손님에게 다과나 음료수를 준비해 줄 때 손님들이 볼 수 있게 마련해 놓는 책들을 소위 "coffee table books"라고 하는데 (커피 테이블 위에 얹혀놓기 때문에) 나는 나름 이렇게 모아놓았었다.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과 설렘이 더 크다. 그리고 "언젠가 읽으려고" 샀던 책들도 많았기 때문에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난 것 같기도 하다. 한결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