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바람 Nov 19. 2023

선택과 집중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은 한 해가 마무리가 될 때마다 yearbook(졸업앨범)을 사서 그 페이지들을 친구들의 싸인이나 메시지로 채우는 게 일종의 전통이다. 한국에도 졸업앨범이 있으니 아마 비슷한 전통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졸업앨범은 보통 졸업 한 달 전쯤 나오는데, 이러면 졸업 전 한 달간은 수업 내내 학생들이 졸업앨범을 돌려가며 메시지를 적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총 7군데, 그리고 그중 6군데를 미국에서 다녔으니 가끔 이렇게 내 예전 졸업앨범을 들쳐보는 게 재밌다. 이젠 직접적인 연락이 끊긴 친구의 SNS계정을 다시 찾아가 보기도 한다.  


나와 대화를 하다 보면, "삶을 사랑하는 게 보인다"라는 말을 듣는다. 동생이 언제 "언니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줬는데 그게 가장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나와 고등학교 신문사를 같이 운영했던 친구가 써주었던 편지


나와 같이 고등학교 신문사 'The Charger Chant'를 함께 운영했던 친구가 써준 편지에서, 이 친구는 말한다. 자신은 보통 한 사람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한 단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그 한 단어는 "열정"이라고.


무려 14년 전의 편지지만, 그때의 나의 모습과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진화"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때의 내가 가장 진실된 나의 모습인 것 같고, 그때의 성향이나 취향에서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삶의 모든 순간을 소중하게 본다. 최대한 만끽하려고 한다.


최근 나이가 들면서, 이 상태를 유지하려면 예전처럼 매 순간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보고 먹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80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2주에 책 한 권을 읽는다 해도, 이제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1300권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게 숫자로는 어마어마해 보일 수 있지만 생각보다 한정된 숫자다. 특히, 2주에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실로 그 2주 동안 그 세상에 들어갔다 나오는 엄청난 경험인데, 책 한 권 한 권을 읽는 게 굉장히 소중해진다. 


여행도,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여행도 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려면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3끼를 먹는 것보다 두 끼 - 때로는 한 끼를 먹는 게 더 낫다. 밖에 나가서 먹는 것이 근사한 한 끼가 아니라면, 왜 요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는 시점이다. 한 끼를 먹더라도 내 취향으로, 제대로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아직까지는 여러 경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다. 일본어 학원도 다녀보고 싶고, 배우다가 만 중국어도 다시 배우고 싶다. 요리 학원도 다녀보고 싶고, 책도 더 읽고 싶고, 이 가수 저 가수의 새로 나온 앨범들도 들어봐야 한다 (딘이 드디어 공백기를 끝내고 한 곡을 올렸다. 크러쉬도 19곡이나 수록된 앨범을 냈다. 내 눈만큼, 손가락만큼, 귀도 바쁘다).


진공청소기처럼 흡입을 하며 알아가던 것들은 점점 취향이라는 형태로 내 삶에 녹아들고 있다. 더 마구잡이로 흡입할지, 아니면 이제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해 하나하나 살펴가며 볼지. 


이런 고민을 할 때 어느덧 느낀다. 이젠 정말 30 대구나.

작가의 이전글 오늘 할머니 기분이 좋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