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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y 18. 2024

잠을 잘 자는 사람

나는 잠을 잘 잔다. 꿈도 거의 안 꾸고, 꾼다고 해도 거의 좋은 꿈만 꾼다. 분명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며 이건 어느 정도 정신상태와 건강을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얼마나 잠을 잘 자냐면...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기로 마음먹으면 보통 10분 안에 잠들 수 있고 (피곤한 날은 아마 1분도 안돼서 잘 것이다) 잠을 자는 즉시 보통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아침에 커튼사이로 햇살이 살짝 들어오며 방이 밝아지면 저절로 깨는데 문제가 없다. 알람이 울리면 바로 깰 수 있고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는 경우도 별로 없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진 모두 나처럼 이렇게 잘 자는 줄 알았다. 오히려 나이가 드니까 잠을 잘 못 잤다고, 혹은 수면시간이 적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 이게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깨달았다. 


나도 아주 잠깐, 한 3일 정도 잠이 잘 들지 못할 때가 있었다. 대학교 때, pre-med로 의대를 준비하며 나와 맞지 않는 전공을 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이다. 그때 했던 경험과 빗대어 잠에 대해 잠깐 고찰을 해보자면, 잠을 잘 잔다는 것은 '오늘 하루 만족스러웠다'라고 느끼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나는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보통 다 써버리고 잔다. (내가 하루에 대한 기대치가 크지 않은 걸 수도 있다.)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 또한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차라리 낮잠을 자거나 저녁에 잠을 빨리 잔 이후 새벽에 일어나 충전된 에너지를 쓰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고, 실제로 밤새서 일하는 것보다 쪽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계속하는 스타일이다 (물론, 업무상 나는 이게 가능하다. 엔지니어들이나 다른 이공계는 어쩌면 하던 flow를 계속 지탱하고자 불가피하게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 잠을 잘 들게 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은 '어차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이다. 누군가를 좋아해도, 그 사람에게 나를 좋아해 달라고 강요할 수 없다.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을 컨트롤 해서 날 좋아하게 만들 수 없다. 그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것이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러면 더 애가 타겠지, 이런 식의 생각은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이나 인간관계의 외의 다른 것도 다 그렇다. 나는 어차피 상황을 조작하거나,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거나 미리 예상하거나 그런 심리전에는 재능이 없다. 남의 마음을 얻는 데에도, 잃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 딱히 터득해 낸 스킬이 없다. 


그리고 내 삶에는 굳이 그런 스킬을 터득하지 않기로 했다. 이 나이에 와서 그것을 터득하는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를 넘는다는 것을 잘 알기 대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를 챙기는 것. 그리고 나를 지키는 것. 그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매일 밤 깊은 잠에 빠지며 달콤한 꿈을 꿀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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