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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Jun 26. 2024

역시 건강한 게 제일 중요하다

진료의자 위에서 눈을 꾹 감으며 드는 생각

매년 해야 하는데 미루는 것이 있다.


바로 치과 가서 스케일링을 받는 일. 1년에 한 번만 하면 되고, 보통 10분에서 15분 안에 끝나는 데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아프지도 않은 일인데도 왜 그렇게 미루게 되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나는 자주 가는 치과가 없는 상황이었고, 마침 친한 후배가 알려준 그 후배 부모님이 하시는 치과가 일하는 곳과 아주 가까워서 몇 달 미루다 예약을 잡고 진료를 받았다. 참고로 나는 어렸을 때 한번 크게 넘어져서 착색된 앞니 빼고는 나머지 이는 꽤나 상태가 좋은 편이다.


어쨌든 진료의자에 앉아서 점점 내 등이 내려가고, "아~" 하며 입을 벌리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긴장하게 된다. 스케일링받는 10분 내내 혹시 아프다는 표현을 하면 스케일링하는데 방해가 될까 봐 얼굴은 괜찮은 것처럼 미동도 없지만 잇몸이 콕콕 찔러질 때마다 주먹을 꽉 쥐며 긴장하게 된다. 


어쨌든 예전에 스케일링을 한번 받으면서 이가 시린 부분을 한번 발견해서 레진으로 때웠던 기억이 있는데, 그다음에 매번 스케일링을 받을 때마다 그 기억이 살아나면서 이렇게 긴장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차가운 물과 바람을 내뿜는 도구들이 잇몸과 이 사이를 스쳐 지나갈 때 제발 시린 이가 없길 바라며 긴장한다.


최근에 정신적으로 힘든 일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어제 진료의자 위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육체적 고통이 제일 두렵다.


스케일링을 받는 내내 '10분만 버티면 된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요즘에도 허리가 가끔 아프지만 그 허리 고통이 최고치를 찍었던 2022년 초에 비하면 많이 살만하다는 생각도 한다. 중학교 때 알레르기로 잠깐 힘들었던 시절, 고등학교 때 두통이 잠깐씩 왔던 시절도 생각해 본다. 그 모든 고통들이 정말 스쳐 지나가는 수준이라서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과 동시에, 만약 내 몸 중 어딘가 아파서 계속 지속되는 고통이 있다면 얼마나 힘들까 생각했다. 육체적 고통은 매 순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띄는 반면, 정신적 아픔이나 슬픔은 그래도 내가 생각의 흐름의 방향을 바꾸려 노력하며 그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너무 억울하거나 트라우마 수준의 힘든 기억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리 환경을 바꾼다 해도 매 순간 떠올려지는 것을 막긴 힘들 것 같긴 한다). 우리의 뇌는 그 정도로 순응성(malleable)과 회복력(resilience)이 있으며, 신체의 다른 부분보다도 꽤나 강하게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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