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문직을 잠시 쉬고 있습니다

by 봄바람

지난 4월, 나는 지난 7년 동안 나를 대표하던 한 부분에서 잠시 떨어져 있기로 했다.


첫 로펌에 들어간 이후부터 가끔 일어나는 자기소개 자리에서, 뉴욕에서는 대형로펌 M&A 변호사로, 실리콘 밸리에서는 대형로펌 지식재산권 변호사로, 한국에서는 대형기획사 해외법무팀의 변호사로 나를 소개해왔었다.


여기서 쓰지 못하는 내용이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다행히 xAI라는 회사에 갈 수 있었다. 다만, 변호사가 아닌 형태로.


대부분 사람들은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굉장히 의도적인 선택이었다. 이 회사를 선택한 것부터, 이 회사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것까지.


그 당시 나는 회사보다는 일론 머스크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일론 머스크가 일하는 스타일, 그리고 그가 만드는 회사들은 내부적으로 진짜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xAI에 지원했다. 당시 몇몇의 포지션이 있었다. 변호사 포지션도 있었고, 지금 하고 있는 AI Tutor 포지션이 있었다. AI Tutor 포지션은 이름은 생소하겠지만 data annotation specialist라고 생각하는 게 편하고, 일반적인 회사들에서 데이터를 그저 쉽게 쉽게 레이블링 하는 것보다는 테크니컬 한 스킬들을 가지고 AI에게 넣을 데이터를 만들고, 가공시키고, AI 가 이해하도록 어느 정도 엔지니어들의 설계까지 돕는 역할이라 AI의 “선생님”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일론 머스크가 지어놓은 이름이다. 그 시점, 나는 바로 몇 달 전 AIGP라는 자격증을 따면서 AI 시스템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더 리서치를 이어갈수록 법조계가 AI의 규제에 대해 얘기하며 “training AI” 는 어떤 식으로 되어야 한다라고 말은 많이 하지만 진짜로 AI 가 어떤 식으로 트레이닝되는지 이해하고 있는 변호사나 law maker들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AI Tutor 포지션을 선택했다. 처음엔 generalist AI Tutor로 영어로 된 영상 및 음성 데이터 작업을 많이 했었고, 몇 달 전부터는 100% 한국어 학습에 몰두하고 있다.


이렇게 일한 지 이제 6개월이 넘으면서, ‘변호사’였던 나. 그리고 아직도 ‘변호사‘인 나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사실 ‘나’라는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 나의 외모도, 말투도, 행동도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재택근무를 오래 하니 살은 조금 더 찐 것 같다). 하지만 주변에서의 인식이 달라질 수 있는 점은 캐치했다.


그저 회사원으로 나를 소개하면, 약간의 관심 정도로 그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변호사로 나를 소개했을 때 나왔던 반응들은, 내가 모르고 있었던 어느 정도의 ‘특권‘이었다.


변호사 이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곳들도 있었다. 바로 변호사 협회 모임자리들이다. 다행히 지난해 회비도 내었고,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지 않아도 협회에 알고 있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도 참석할 수 있긴 하다. 정말 신기하게 내가 아는 세계라서 그런지, 이런 협회에 갈 때 마음이 편해진다. 변호사 협회만 나갈 때는 그 협회 안에서도 참 다양하고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안정적이고 편한 모임에 가고 싶을 때 변호사 모임을 떠올린다. 변호사 협회 안에는 그래도 비교적 비슷한 온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공격성이나 예민함을 감지하려는 에너지를 조금 덜 쓰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나 자신에 대해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내가 변호사 일을 정말 좋아했었고 즐겨했었던 사람이었다는 깨달음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궁금증도 다 풀렸고, 특히 AI를 직접 만들고 배포하는 회사는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정말 많이 배웠다. 즐거울 때도 있었고, 처음 배우는 일이라 어려웠던 일도 있었고, 내 상상을 뛰어넘는 일을 하게 될 때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계약서를 보고 싶었다. 계약서는 어떤 식으로 써져 있는지 보고 싶었고, 회사의 리스크는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AI 회사에 있는 만큼 AI 관련 법이나 규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먹고살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입증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은 뼛속까지 변호사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실패를 대하는 회사와 그 대리인의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