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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끝은 허무했다

나의 20대를 만든 8가지 직업 04 - 뇌과학 연구소 조수

by 봄바람

대학교 3학년. 심리학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자연스럽게도, 뇌과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갔다. 듀크 대학교 3학년이 끝나기 전, 나는 Vertical Integration Program이라는 뇌과학과 임상심리학을 연결 지어 연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뇌과학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연구 주제를 설명하자면 거식증 환자들이 (일반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인물 사진들을 볼 때 눈이 어디에 주로 고정되는지, 그리고 어떤 사진을 봤을 때 뇌 안에 어떤 부분에서 더 많은 반응을 일으키는지 데이터를 모은 후, 코딩을 통해 데이터를 추려내고 분석하는 일이었다.


워낙 짧은 기간에 안에 끝낸 경험이라, 많은 기억이 나진 않는다. 사실 코딩이 나와 정말 안 맞았던 슬픈 기억만 난다. 10주 동안, 나의 일과는 다음과 같았다:


1) 먼저 임상심리학 연구소에 먼저 들리고 MRI 데이터와 Eye Tracking 데이터를 가지고 받는다

2) MRI 데이터와 Eye Tracking데이터를 가지고 뇌과학 연구소로 와서 코딩을 통해 데이터를 정리한다

3) 정리된 데이터를 보며 분석한다


이 일과는 전에 언급한 동기부여 심리학 연구소의 일과와 자체는 그렇게 다르지 않은데 (연구하는 주제는 다르지만, 책상 앞 노가다인것은 똑같았다)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이 프로그램에서 나한테 정해준 멘토가 나랑 맞지 않던 사람이었다. 지정된 멘토는 같은 연구소에서 일하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이었는데, 이 멘토는 마지막 해 졸업과 논문을 앞두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도움을 주는걸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나를 거의 투명인간 취급했다. 결국 나는 연구소 구석에서 혼자 코딩하며 키보드를 두들길 수밖에 없었다.


이 경험으로 나는 또다시 나에 대해서, 또 나의 진로 방향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되었다.


1) 나는 "연구"라는 프로세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굳이 아동심리학이나 교육심리학이지 않아도, 어떤 주제든 실험을 만들고 그 실험을 통해 나오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행위 자체를 즐거워한다는 것이었다.


2) 하지만 연구를 좋아하는 것만큼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보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같은 공간에서 쓰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에게 영향받는다. 일 만큼 중요한 것이, 혹은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같이 일하느냐이다.


3) 연구가 재밌고, 연구에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보는 것도 재밌었다. 하지만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연구를 발표하고 나서의 감정이었다. 연구가 끝나고 페이퍼를 쓰고, 포스터를 만들고 교수들에게 보여주었다. 잘하면 또 뇌과학 분야의 논문지에 실릴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나에게 든 생각은, '결국 논문지를 읽으시는 분들도 교수님들 밖에 없는데...'였다. 연구를 해도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연구는 지극히 적었고, 중요한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은 오히려 Malcolm Gladwell같은 작가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책에 언급이 될 정도의 연구는, 정말 심리학이나 뇌과학 안에서도 "레전드"급 - 교과서에 나오고 수업에서 자주 가르쳐지는 - 연구여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살짝 고민이 들었다. 내가 평생 연구를 하는 게 행복할까?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데서만 그치는데 만족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에 아무도 관심이 없어도, 나의 주변에 아무런 임팩트가 없어도 나는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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