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바람 Jun 17. 2021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

나의 20대를 만든 8가지 직업 03 - 심리학 연구소 조수

심리학 연구소 조수

대학, 그리고 방황

대학교 1학년, 나는 대학이 나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잡고 싶었다. 대학 신문사에서 글도 썼었고, 학교에서 공연도 했으며, 수업도 포커스 프로그램이라는 심도 있게 여러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수업의 형태를 들었었다. 그 와중에 도서관에서 해외 도서 카탈로그를 관리하는 일도 했었다. 그 치열한 일학년의 끝으로 나는 Duke Engage라는 학교가 제공하는 기회 중, 이민법에 대해 배우는 프로그램을 여름에 듣게 되었다.


2010년의 여름은, SB 1070라는 법이 통과된 몇 달 후의 상황이었다. SB 1070는 아직까지도 한 때 통과되었던 법들 중 가장 잘못되었다고 판단 되어지는 법으로, 경찰들이 지나가는 아무 사람이나 붙잡아서 한국으로 치면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에 관련된 서류를 보여달라고 할 수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만약 서류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그날 즉시 멕시코나 다른 국가로 보내기 위해 임시로 감금당할 수 있는,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너무나도 잔인했던 법이다.


정말 많이 배웠고, 아직까지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 여름부터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듣는 인문학, 사회학 수업들을 배운 사람들이 사회 나와서 막상 하는 일들이 뭔가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 당시 나는 자유전공이었지만 고려하고 있었던 전공들은 public policy (공공 정책)나 political science (정치 과학)이었는데, 이런 전공을 하고 사회에 나온 사람들이 법을 제대로 싸우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혹은 좋은 정책을 낸다고 해도 그게 좋은 정책이었는지 알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게 답답했다. (그리고 좋은 정책이라는 것을 판단하는데도 다 의견이 다르고, 그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 등등 이런 애매모호한 답이 없는듯한 분쟁이 싫었다.) 시간만이 우리한테 알려주리라--그런 느낌이 들었고 나는 그런 걸 인내할 수 있는 성격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정의에 불타오르기만 했던 학생이 아니였나 싶다).


의대를 고려하다

인문학, 사회학, 정치과학 등등 문과 수업들이 답답해지자, 부모님은 나에게 의대를 권했다. 나도 사실 그때 차라리 뭔가 명확한 답이 있는 이과가 나에게 더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대학교 2학년을 시작하며 의대를 준비하는 수업들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수학, 화학, 생물학, 뇌과학, 이런 수업들을 듣는 와중에도 역사 수업들을 놓을 수 없었다. 과학의 역사, 혹은 의료시스템에 대한 역사를 한 학기에 하나씩 넣으며 스케줄을 짰다.


1년 동안 의대를 준비하는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생물학이나 화학이 재미없었던 것은 아닌데,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부모님의 기대였다. 내가 인문학이나 사회학을 들을 때는 아무 말 없던 부모님이, 내가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이 되자 나의 시간표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나의 시험 준비에 신경을 쓰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느덧, 생물학 수업에서 필기를 하는 내가 마치 온 가족을 대표하며 필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나에겐 이 과정이 고통스러웠고, 엄마 아빠에게서 오는 의대에 관한 통화는 더 잦아졌다. 그러다 어느날, 나는 사실 의사가 되고 싶어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20대를 의대에서, 그리고 결과적으로 평생을 병원에서 보낸다는 상상을 할 때, 가슴이 벅차오르기 보다 갑갑해지는 걸 느꼈다. 내 주위에 그런 미래를 꿈꾸는 의대 준비생들이 존경스러웠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걸 깨달았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 끝에 엄마 아빠에게 긴 편지를 썼다. 지난 일 년 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부모님은 무엇을 할거길래 의대를 포기하냐고 물었다. 의대를 포기한다는 것에 대한 반대라기 보다, 의대를 포기할만한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면 이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셨다. 세상에 대부분 사람들은 "가슴 뛰는 일"을 하지 않고있고, 무엇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지 평생 알지 못한채 사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그나마 정말 괜찮은 옵션을 포기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을 만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이 길을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비유했다. 내가 지금 의대를 택하는 것은 억지로 시집 가는 거 같다고. 모두가 '저 정도 사람이면 됐지' 혹은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지만 결과적으로 '나랑 잘 맞는지는 모르겠는' 사람에게 시집보내지는 것 같다고. 그래서 이런 결혼은 싫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랑 잘 맞는지 모르겠는 사람과 쉽게 결혼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심리학을 찾다

의대 준비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그 여름, 많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심리학이었다. 특히, 교육심리학과 아동심리학. 나 자신의 심리를 알고 싶은 마음에서 자란 관심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심리학 공부를 시작해 보니 나와 정말 잘 맞았었다. 내가 힘들어하던 인문학, 사회학이나 정치학의 모호함도 답답함도 없었다 (심리학, 그리고 심리학을 이루는 실험들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과학적이다). 그렇게 심리학으로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와중, 심리학을 깊게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보통 심리학 연구소 (Psychology Lab)에서 조수로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외 도서 카탈로그 직업을 알아보던 것처럼 나는 다시 한번 듀크 웹사이트를 켜고 쭉 돌아봤다. 그리고 Linnenbrink-Garcia Motivation Lab이라는 곳에서 연구 조수 (Research Assistant)를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나의 관심도 동기부여, 특히 학업의 성취에 관한 동기부여였기 때문에 딱 그것과 관련된 연구를 하시는 교수님이 운영하는 '동기부여 연구소'에서 인터뷰를 보았다. 인터뷰 과정은 생각보다 쉬웠고, 나는 바로 일하게 되었다.


대학교 심리학 연구원 조수가 하는 일


연구소에는 교수님, Post-Doctorate Fellow (흔히 '포닥'이라고 부른다) 한 명, 그리고 대학원생 두 명, 그리고 나와 같은 포지션인 학부생 조수가 총 4명이었다. 두 명은 나보다 윗 학년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나와 같은 학년이었다. 나의 매일 일과는 보통 두가지로 나누어졌는데, 실험에 참가하기 위한 학생들이나 지원자들을 안내하고 실험을 진행 시키는 업무, 그리고 그 학생들이나 지원자들이 실험에서 답을 한 데이터를 컴퓨터에 옮기고 엑셀에 노가다로 입력시키는 업무였다.


우리 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실험도 꽤나 재밌었고 (실험을 하기 전에 어떤 식의 제시어를 들었는지가 실험자의 동기부여, 혹은 실험을 잘하고자 하는 의지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보는 것이었다) 연구원에서 일하는 일상도 재밌었다. 데이터를 엑셀에 노가다로 입력시키는 것도, 단순작업이라 그런지 옆에 있는 다른 조수들과 함께 이야기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하는 것도 재밌었다. 1학년 때 했던 도서관 일보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순간들은 적었지만,  외로웠고  의미있다고 느꼈다. 돌아보면 내가 대학교 3학년  같이 일하던 조수들은 굉장히 착하고 자상한 (백인) 언니들이었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렇게 팀을 꾸리고, 같이 작업하며 연구하는 삶도 꽤 즐겁겠구나. 나름 행복하겠구나. 또 연구에 참여하는 여러 학생들과 만나고, 또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의미 있고 즐거울 것 같다.


그렇게 대학교 3학년이 끝나갈 즈음, 나는 심리학 박사과정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전 02화 나의 첫 직장은 도서관에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