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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Jun 16. 2021

나의 첫 직장은 도서관에 있었다

나의 20대를 만든 8가지 직업 02 - 해외 도서 카탈로그 작성자

해외 도서 카탈로그 작성자

나의 첫 직장은 도서관에 있었다

가방에 책 한 권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은, 보통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사람들이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구연동화를 배운 이후 더 책을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글을 읽지 못했을 때부터 책을 꺼내서 그림이라도 보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였다. 


어렸을 때의 이야기 하나를 말하자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엄마의 봉사활동이 끝나길 기다리던 날이 있었다. 그 때 각 반의 학부모들 마다 학교에 와서 청소를 돕거나 정리를 돕는, 그런 봉사활동이었는데 엄마가 그것을 할 동안에 엄마는 나에게 도서관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봉사활동이 다 끝나고 나를 데리러 온 엄마에게 도서관을 지키던 선생님이 "이렇게 한 자리에서 책 한 권 가지고 오래 읽는 애는 처음 봤다"라고 엄마에게 말하셨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이 말하기를, 보통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꺼냈다, 다른 걸로 바꿨다, 이러는 반면 나는 그냥 처음에 고른 책을 엄마가 오기까지 그저 쭉 읽었다는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엄마는 나에게 그 선생님이 이렇게 얘기한 걸 말해주었고, 나는 그 때 처음 책도 "싫증"이 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릴 때 책과 글에 얽힌 기억들은 이렇다. 엄마 아빠의 친구 집에 가야하는 날에는, 그 집 책장에는 어떤 책이 있을까 궁금해 하던 기억. 구연동화를 배우며 책을 소리내어 읽는 재미에 빠지던 기억. C.S. Lewis가 쓴 나니아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도 판타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던 기억. 외삼촌이 사다준 위인전을 읽으며 훌륭한 사람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을 하게 된 기억.


대학교에 입학하다

그렇게 책을 좋아했던 어린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2009년에 듀크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듀크에 입학하면서 어느 정도의 장학금을 받게 되었었는데, 그때 장학금의 작은 부분은 work-study라는 제도로 대학교 안에서 일을 찾으면 그 일을 했던 시간에 따라 학비에서 삭감을 해주는 제도였다.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1학년 때 정말 열심히 살았었다. 수업을 열성적으로 들은 건 물론, 학교 신문사에 관심이 있어서 신문사에 기사도 여러 개 써보고, 새로 만난 학생들과 시간도 많이 보내며 친구들도 사귀고, K-Pop 춤을 추는 "님스"라는 그룹에 속해서 Lunar New Year이라는 공연에도 섰었다.)


대학교 웹사이트에 올려진 여러 가지 일자리를 쭉 스크롤하다가 내 눈에 띈 일자리가 있었다. 도서관에서 올린, 한 시간에 $9.50 (만원) 정도 준다는 일자리.


해외 도서 카탈로그 작성자

Duke Library Foreign Books Cataloguer. 듀크 대학 도서관의 해외 도서 카탈로그 작성자. 심지어 지금 특별히 한국인을 찾는다고 써 있었다. 바로 지원하고 인터뷰를 봤다.


일은 참 신기했다. 듀크 대학교 도서관은 어느 도서관들과 마찬가지로 해외 도서도 꽤나 가지고 있었는데, 해외도서를 우리가 직접 구매를 하거나 기부를 받을 때 그것을 담당하는 일이었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미국 달러 (USD)와 한국 원 (KRW)를 환율 계산하며 우리가 한국에서 책을 구매할 때 계산을 조심스럽게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1불이 1,000원이니, "0"한 개만 잘못 찍어도 큰일 난다고, 일 시작하는 첫날 담당자는 이 부분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이 일을 일주일에 3일, 6개월 정도 했었는데, 일은 두 가지의 날들로 구분이 될 수 있었다. 책을 주문하는 날들, 그리고 책이 들어오는 날들.


책을 주문하는 날들은 컴퓨터 앞에 서서 도서 목록을 쭉 보며 구매를 하거나 한국에 있는 다른 도서관한테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게, 이미 서로간의 계약이 되어 있어서 거의 금액을 확인하는 수준의 일이었다. 그래서 5시간 일하게 되어있다면 일은 2-3시간 하면 끝나고, 나머지 시간은 페이퍼를 쓰거나, 시험공부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책이 들어오는 날들은 너무 신나서 계속 책이 들어올 문을 힐끔힐끔 봤던 게 기억난다. 이 알바의 가장 좋았던 부분은 내가 듀크에 있었던 어느 한국 학생들보다도 더 빨리 어떤 한국 책들이 들어오는지 알았던 것이었는데, 책들이 들어오는 날이면 내가 일하던 곳에 책이 몇 박스씩 왔었다. 그러면 나는 컴퓨터로 시스템에 책이 들어왔다고 표시하고, East Asian Books (동양서적) 카탈로그에 책 이름, 작가 이름, 출판사 등등을 적고 도서관 어디에 넣으면 되는지 표시가 되어있는 스티커를 책에다가 붙이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책이 도서관에게 잘 옮겨지게 카트를 끌고 바로 연결되어있는 창고 같은 곳에 가져다 놓아야 했었다 (듀크는 학교가 워낙 커서 동쪽 캠퍼스, 서쪽 캠퍼스로 나누어져 있다. 내가 일했던 곳은 동쪽 캠퍼스에 있었지만 동쪽 캠퍼스에 있는 릴리 도서관으로 책을 보내는게 아니라, 동양서적을 가지고 있는 서쪽 캠퍼스에 있는 퍼킨스 도서관이라는 큰 도서관에 보냈다. 동쪽 캠퍼스와 서쪽 캠퍼스는 버스로 학생들이 왔다 갔다 했었고, 소모시간은 버스로 7-10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떻게 노희경 대본집이 듀크 도서관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사진 오른쪽에 나와있듯 책 밑에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었다


박스에 스티커들을 다 붙인 다음에 카트에 차곡차곡 올려놓고, 창고로 그 카트를 가지고 간 다음 나는 내 담당자가 모를 때 그날 도착한 책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만 알고 있는 새 책을 먼저 마음껏 읽어볼 수 있는 시간이라니, 가끔 이런 일자리를 찾게 된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일을 하며 배우게 된 "나"

이제는 인터넷에서 찾기도 어려운 책이지만, 그때 읽었던 책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이 '서있는 젊음'이라는 성균관 대학교 교수님들이 청년들에게 쓴 에세이 집이다

그렇게 즐겁게 책 읽는 날들도 많았지만 결국 이 일을 6개월밖에 하지 않은 건, 생각보다 이 일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일을 하면서 나에 대해서 알게 된 건, 그리고 나에게 좋을 것 같은 직업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1) 책을 아무리 많이 읽을 수 있다고 해도, 조용하게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못하는 일은 너무 외롭다. 한 시간 넘게 쭉,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 있다는 것은 살짝 우울한 느낌도 들었다.


2) 컴퓨터 앞 단순작업의 꼼꼼함을 요구로 하는 일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빨리 소모된다. 일을 하고 돌아온 날은 공부가 너무 되지 않았다. 공부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저녁에 친구들과 같이 밥 먹을 때도 말이 적어졌으며, 수업 참여도도 낮아졌다.


3) 일하는 곳이 꽤나 언덕으로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일하러 가면서 체력 소모도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대학교 1학년 때라 대학교에서는 내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 많았어서 일하고 돌아와서 피곤한 날은 이렇게 일해도 괜찮은지, 고민이 많았었다. 그리고 오히려 창고에 도착한 여러 책을 읽으면서 (그중 <서있는 젊음>이라는 책의 영향이 컸다) "지금 일 하는 것보다, 그리고 이 창고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보다, 대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경험들을 최대한 많이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곧 그만두었다.


다시 생각하면 딱 6개월 정도 경험해보기에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배우게 하는 직업이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동경도 없어지게 했고, 나라는 사람은 하는 일은 혼자 하는 일이라도,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어느 정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카페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한다).


또 한 가지 정말 중요한 경험이었던 것은, 이 일자리를 얻기기 까지의 경험, 그리고 그만두기까지의 경험이다.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일자리를 발견하고, 지원하고, 인터뷰 보고 일 하게 시작되는 것. 


도서관 담당자들만 출입 가능한 배지를 얻어 보는 것. 


대학교 1학년 때 이걸 해본 것이, 어떤 일이든 한번 지원해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만해야겠다고 생각이 들 때 그만 하는 것, 그것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걸 일찍 배운 것도 감사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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