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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Jan 29. 2022

노력파의 고백

직장인, 다시 공부합니다 01 - Introduction

직장인이 되고 난 후, 나는 공부를 멈추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공부"의 정의를 내리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언급을 해야 할 단어가 바로 "습득"인 것 같다. 지금부터 3년 하고 몇 개월 전, 난 직장인이 되었고 지금까지 꾸준히 배움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우던 때와는 달리, 직장인이 되고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습득"을 통해 이루어졌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조금씩 흡수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주어지는 업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고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 양이 너무 버거울 때도, 때로는 바쁜 움직임에 비해 새로 배우는 것이 없을 때도 많았지만.


나같이 계획하는 걸 좋아하고 차근차근 미리 준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여기서 고백하지만 공부가 참 그리웠다. 나의 아주 개인적인 공부는 정의는, 외우고 이해해야 할 지식/정보의 양을 정해서 그것을 능동적으로 시간을 할애하며 꾸역꾸역 머리에 집어넣는 행위를 말한다. 결과적으로 "시험"이라는 것이 있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공부를 했지만, 가끔가다 그냥 충동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50주에 대한 책을 사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 책 안에 있는 정보들을 외우고 싶다든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태리 화가들의 작품들을 다 섭렵해버린다던지. 물론 관련된 책들은 우리 집에 있지만, 일이 끝난 뒤에 나는 책상 위에서 그 책들을 펴서 읽는 대신 소파 위에서 넷플릭스를 켰다.


이러던 나에게 다시 공부를 할 기회가 생겼다. 물론,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2022년 7월에 치게 될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약간, 두근거린다.


이 두근거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시험을 패스하든 말든 (물론 안간힘을 써서 패스를 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공부라는 행위는 내가 나에게 선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일할 때 써먹지 않을 지식이더라도, 실제 생활에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 지식이더라도,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내 머릿속에 내가 입력하는 순간이 즐겁다.


물론, 공부가 괴로울 때도 있다. 책상에 앉아서 진득하게 무언가를 계속 이해하고 외우려는 안간힘을 쓰는 자체가 괴로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부에 극도로 괴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공부할 양은 엄청나게 많은데 그것을 소화할 시간이 없을 때 오는 생기는 불안감이 시간이 갈수록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로 바뀌기 때문이다.


나도 그 스트레스를 겪어보지 않은 게 아니다.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느낌도 겪어봤기 때문에 공부를 좋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반대의 느낌이 내가 시험장에 100% 준비되어서 당당하게 들어갈 때의 느낌이고, 내가 푸는 모든 문제에 확신이 차 있을 때다.


이렇게 공부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와, 자신감에 차 있을 때를 겪어보니, 공부하기가 지금 고통스럽다면 문제는 공부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시험이 날짜가 있다면 훨씬 더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한다. 시험 범위를 파악하고, 남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다면 그것의 세배는 쓸 생각을 하며 계산하기 시작한다. 남들이 보통 100시간을 썼다고 하면 나는 300시간을 쓸 준비를 하는 것이다. 


몇 주 전 만났던 친구에게 나의 공부 계획을 또 설명하니 그 친구가 이렇게 물었다. "너는 진짜 노력파야. 너랑 있으면 그게 딱 느껴져. 그게 부럽기도 하고... 어떻게 그렇게 일찍부터 준비할 마음이 생기는 거야?"


노력파,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였다. 미국 로펌에서 일을 하니 당연히 "노력파"라는 한국 단어를 들을 리는 없었고, 내가 고등학교 때 다이어리에 많이 쓰던 단어였다.


친구의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지 않아. 나의 능력은 더더욱 믿지 않고. 나는 항상 내가 남들보다 머리가 좋지 않다고 스스로 믿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으로 승부해야한다고 생각했어.


사실 누가 이런 말을 하고 싶을까. 누가 내가 남보다 어떤 부분이라도 평균보다 더 낮다고 인정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한 가지 느낀 게 있다. 차라리 이것을 완전히 인정하고 열심히, 꾸준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어 냈다면, 그게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내가 했던 노력이 자랑스러워진다는 것을.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은 어렵기로 소문났다. 로펌은 나에게 7월 시험을 위해 한 달 휴가를 주기로 했고, 아마 나는 시험날짜부터 한 달 전인 6월부터 그 휴가를 쓸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다른 변호사들에겐 그 한 달이 시험을 준비하고 통과하기에 충분한 시간일지 몰라도, 나에겐 터무니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걸. 시험 날짜가 다가올 때 준비가 안되어 있어 매일 불안한 것보다,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더 자신감에 차있는 나로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탄탄한 공부 계획을 만들고, 그것을 매일 실천할 꾸준함이 필요하다. 


이렇게 사는 게 피곤하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정말 솔직히 고백하자면, 사실, 조금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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