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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r 10. 2022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로망

 N년차 자취러 02 - 모든게 설레이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시작은 인테리어에 관한 관심이었던 것 같다. 인테리어에 관한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어렸을 때부터 잡지에 나오는 예쁜 방들을 오려서 스케치북에 풀로 붙이며 언젠가 가지게 될 "나만의 방"을 꿈꾸던 소녀에겐 어쩌면 "미니멀 라이프" 혹은 "미니멀리즘"이라는 키워드는 당연히 일찍 접할 수밖에 없던 것 같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힘>과 시작해 후미오 사카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는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 이후 읽은 책들은 선혜림의 <처음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 Cait Flanders의 <A Year of Less>, 그리고 미니멀리즘이 트렌드가 되기 전에 이미 200년 전쯤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행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그 당시에 출판되었던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은 거의 다 읽었던 것 같다. 미니멀 라이프 책들은 그냥 인테리어에 대한 말을 넘어 삶의 방식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과 너무 가깝기 때문에 읽으면서 항상 고개를 끄덕거리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마치 책을 읽는 자체로도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 같았다.


그게 아마 8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도 미니멀 라이프와는 거리가 멀다.


곤도 마리에의 책의 핵심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였다. 그리고 8년 동안,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물건이 나에게 설렘을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발견하는 물건 모두 다 설렘을 준다는 것도. 절대 생활방식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가장 큰 예가 책이었다. 거의 모든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책들은 전자판 형식의 책으로 읽는 스타일을 바꾸라고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책에 대한 집중도가 굉장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고, 특히 소설은 절대 전자기기로 읽지 못하는 것을 확실히 인지했다. 언젠가는 나만의 집에 큰 서재를 두는 것을 인생 버킷리스트에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이것만큼은 용납하기로 시작한 게 이젠 닥치는 대로 취향 것 이 책, 저 책 다 모으고 있다 (최근 새로 수집을 시작한 카테고리는 드라마의 대본집이다).


그렇다고 전자기기로 책을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 살고 있는 나는 RidiBooks를 정말 감사하게 쓰고 있는데, 한국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사람은 생각보다 한국 책을 사고 읽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 책을 직접 살 수 있는 사이트는 반디 북스 (bandibooksus.com)이 있지만, 배송이 약간 느리고 미국까지 배송 오는 책들이 한정되어있다는 큰 단점이 있다. 리디북스는 대부분의 책을 사서 전자 포맷으로 즉시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리디 셀렉트는 매 달 5천 원 정도의 구독 금액으로 계약되어 있는 책들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전자 책장에 꽂힌 리디 셀렉트 책을 보고, 참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로망을 정말 끝끝내 놓지 못하는구나 싶었다.


작년, 그리고 이번 해 그냥 심심할 때 읽은 (혹은 읽고 있는) 미니멀 라이프 (혹은 "미니멀 근접") 책들은 이렇다:


프랜신 제이 (신예경 옮김)의 <단순함의 즐거움>

프랜신 제이 (권기대 옮김)의 <가볍게 살고 있습니다>

아키(허영은 옮김)의 <나에게 맞는 미니멀 라이프>

아즈마 가나코 (박승희 옮김)의 <궁극의 미니멀 라이프>

임다혜의 <딱 1년만 옷 안 사고 살아보기>

신미경의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나는 왜 자꾸 미니멀 라이프 책들에 시선을 돌리게 되는 걸까.


요즘 드는 생각은, 미니멀 라이프도 어떻게 보면 나에게 또 하나의 소비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광고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저 광고가 파는 것은 저 옷이 아니라, 저 옷을 보는 소비자의 상상을 파는 것이라는 것. 나는 저 옷을 사는 게 아니라 저 옷을 예쁘게 입는 그 "날", 그 시간, 그 순간을 살 때가 많다. 예쁜 그릇을 사면 그 그릇을 사는 게 아니라 음식을 담았을 때 조금 더 사람 사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 조금 더 나를 대접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혹은 집에 오는 손님들을 대접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그릇을 사는 것이다.


미니멀 라이프도 어느 순간 내 마음의 소비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지 않으면, 더 사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그냥 무심코 킨 RIDI 앱에 뜬 <궁극의 미니멀 라이프>를 읽으며 "이런 일상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스스로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옷만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부분을 읽을 때는 와, 이렇게 살면 얼마나 단순하고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불가능 한지 스스로 알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찾았을 때는 깔 별로 사야 되는 사람이고, 그 옷이 생각보다 비싸지 않은 경우 제일 좋아하는 색은 하나 더 사놓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미니멀 라이프 책들은 나를 절대 미니멀리스트로 만들어 놓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삶을 동경하는지, 그리고 현실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있어도 괜찮다고, 어느 순간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한 번 보고 다시는 안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좋아하는 영화는 다섯 번 이상 볼 수 있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는 후자다). 혼자 밥을 먹을 때 대충 냉장고에서 있는 그대로 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냉장고에 있는 음식도 다 예쁜 그릇에 꺼내서 풀세팅을 해놓고 먹는 사람도 있다 (맞다... 나는 후자다).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는 비판을 하거나,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죄책감을 들게 한다. 나 또한 그런 죄책감과 로망이 섞여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도서를 계속 찾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우린 다 다르고, 다 다른 취향이 있다. 그 취향 따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으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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