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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Nov 23. 2022

내가 명품을 사지 않는 이유

결국 나를 가장 편하게 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제목을 쓰고, 고쳤다. 살 수 없는 이유라고 할까. 아니야, 사지 않는 이유가 더 맞아. 근데 똑같은 이유가 살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있잖아? 그럼 살 수 없는 이유라고 할까. 


결국 사지 않는 이유라고 썼다.


2018년 10월부터 제대로 사회인이 되어서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 4년 동안 이것저것에 돈을 쓰게 되었다. 워낙 검소한 부모님 아래서 자랐기 때문에 스스로 돈을 벌고 쓰는 세계는 무섭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다.


직업이 변호사라 깔끔하게 입고 직장에 나가야 했는데, 정장 두세 벌과 그에 알맞은 블라우스들을 구입하면 소위 말하는 "출근룩"이 완성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가방이었다. 로스쿨 재학 중 엄마가 큰 마음먹고 사주었던 40만 원대의 가방은 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져 매일 그것을 들고 다니기에는 무거웠고, 자칫 보면 너무 과하게 차려입은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찾다 찾다 정착한 나의 첫 출근 가방은 무난하게 롱샴으로 하기로 했다. 뉴욕 소호 거리에서는 가방에 이름을 무료로 새겨주는 서비스가 있는데, 일 시작하기 바로 전 그렇게 해서 꽤나 특별한 느낌도 있었다. 이 가방을 2년 정도 썼다. 노트북 하나가 들어가고 출근길에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 한 권, 그리고 메이크업 수정할만한 파우치도 넉넉히 들어가는, 내가 생각하기에 사회초년생 직장인이 들고 다니기에 가장 부담이 적은 가방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건을 오래오래 쓰는 성격인 나는, 이 가방의 손잡이의 실밥이 살짝 풀어질 때까지 썼다. 그리고 결국 코로나가 시작되며 출근을 할 수 없을 때 이 가방을 옷장 깊숙이 넣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올 때, 이 가방을 "보내주었다".


지난 4년간 돈을 벌고 쓰며 느낀 점은, 나한테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은 내가 자주 쓸 수 있는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비싼 물건은 - 흔히, 명품은 디자이너의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에 가격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 그 새로 샀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쉽게 쓸 수 없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명품을 사지 않고, 살 수 없다.




한편으로는 최근에는 명품의 역할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상황이다 보니 "첫인상"이라는 것을 주고받는데 (내가 다른 사람의 첫인상을 경험하기도 하고, 그 사람들이 나로 인해 느끼는 첫인상을 배우기도 한다) 아주 가끔, 내가 나를 소개하기 전에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내가 입은 것을 토대로 내가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하는 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아, 이런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기 싫어서 사람들이 명품을 입는 것이구나'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나름 내 소개를 하고, 몇 마디 대화를 하다 보면 더욱더 깨닫는 것들이 있다. 


보이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깨지지 않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굳이 그 사람들과 어울릴 필요가 있을까. 우리의 삶은 사랑하며 시간을 보내기에도 부족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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