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언어 01 - 한국어 찬양, 한글 찬양
나는 2014년 5월에 미국인이 되었다. 10살 때 괌으로 이사를 가고, 그 이후에 한국은 일년에 한 두번씩 들어가는 나의 모국(motherland)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 사귀었던 친구들에게 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린 친구가 되었고, 이제 한국인보다 미국인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사실 대학교 들어가기 전 까지만 해도 일년에 한국에 들어갈 때 한달에서 부터 여름방학 때는 세달 정도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사회인이 된 후, 특히 다른 한국 변호사분들과 얘기를 하면 다들 내가 한국말을 "잘" 하는걸 신기해 하신다. 처음에는 그 신기함이 의아했지만, 이제 주위에 초등학교 때 이민온 "Korean American"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내가 보통 사람들의 "어렸을 때 이민을 간 한국인"이 구사해야 하는 한국어의 기준보다 높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는 중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국어는 나에게 더 소중해졌다. 나는 어렸을때 부터 책을 정말 많이 읽었었고 초등학교 때 초딩병을 심하게 앓아서 가끔 시도 썼을 정도로 언어에 예민했던 아이었다. 그리고, 이민을 올 때쯤 한국 가요계는 SES/핑클/HOT/지오디/신화 (그리고 보아) - 즉 1세대 아이돌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던 시기였는데, 사실 그 때 트렌드는 카세트나 CD를 통째로 사서 듣던 시대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초딩/중딩들은 수록곡까지 외우고 다니던 상황이었다. 미국으로 이민 온 뒤 나는 한국에서 가지고 왔던 CD들을 계속 들었고 아직도 박진영의 가사가 나의 표현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이 그리워서 한국에서 가지고 온 나의 책들이 너덜너덜 할 때 까지 읽은 뒤, 엄마아빠가 가지고 온 책들도 다 읽었던 날들이 기억이 난다. 한국어로 무언가 읽고 싶어서 심지어 가끔 성경책의 구약을 읽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리고 요즘, 이렇게 한국어로 타자를 두드릴때 심적으로 정말 큰 안정을 느낀다. 내가 한국어만 할 줄아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감정을 그렇게 크게 못 느꼈을수도 있는데, 지금 생활에 80% 이상은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서 이런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캐치하는 것 같다. 영어를 쓸 때는 확실히 다른 자아를 가지고 쓰는 느낌이고, 조금 더 프로페셔널 하지만 살짝 더 불편하고 딱딱한 느낌이 있다 (물론 내가 변호사라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동생도 나한테 그랬다 - 한국어 쓸 때 주위 사람들에게 벽이 확 낮아진다는 것이 보인다고).
한국어를 쓸 때의 나는, 조금 더 부드럽고, 상상력이 훨씬 더 풍부하며, 심적으로 여유롭다. 거의 텔레포트해서 다른 세상에 건너가 있는 기분이라면 이해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되려나.
어쨌든 최근 들어 세종대왕님과 집현전의 학자님들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낀다 (실제로 잠자기 전에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든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한글"이라는 우리만의 고유의 문자가 있다는게 지금 현재 한국의 문화적 발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한국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사실 이 포스트를 쓰게 된 계기는, 볼빨간사춘기의 "썸 탈거야"라는 노래를 들으며 역시 한국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쓰게 되었다.
한국어는 다른 나라의 단어와 표현도 우리나라의 정서로 녹일수 있는 기막힌 응용력 (applicability)과 유연성 (flexibility)를 가졌다.
"썸 탈거야"라는 뜻은 "나랑 너랑 썸씽이 있을거야"라는 것을 줄인 말인데, 내가 이 노래를 듣다가 내 동료가 "너 지금 뭐 듣고 있어?" 하면 어떻게 설명할까를 상상하다 한국어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I'm listening to a song called... "I'm going to have something with you (혹은 we're going to have something together"라고 설명을 해야할텐데 - 아마 그걸 들은 미국인은 신기하다고 생각할 것 이다. 미국인들도 썸씽/썸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 그걸 꽤나 신선하다고 느낄 것이, 미국에도 이렇게 은근한 표현이 없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도 고백을 할 때 "I like you" (나 너 좋아해) 대신 "I have feelings for you" (나 너를 향한 감정이 있어)라고 표현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something"을 이런식으로 표현하고 쓴다는것을 단번에 이해를 할 것이다.
한국인들, 그리고 한국어는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미국의 "something"을 "some" 썸으로 줄여서 그 미묘한 감정을 캐치하고 그걸 한국인의 정서로 녹여서 "썸"을 "탄다"라고 표현하고 온 국민이 그 표현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게.
사실 최근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게 바로 "국뽕"(해당 국가의 국제적인 위상이나 역사적인 대단함을 봤을 때 히로뽕 마약을 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 단어 자체를 싫어한다기 보다 그 단어가 써지는 상황을 싫어하는 편인데, 대부분 우리가 자랑스러워 해도 되고, 자랑스러워 할 상황인데도 "국뽕" 이라며 그걸 가볍게 넘겨버리거나 그런 감정들을 조롱해서 그렇다.
나는 한국어/한글만큼은 그 "국뽕" 을 충분히 느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의 언어를 공부해 보는 걸 추천한다. 더 많은 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한국어가 얼마나 역사적으로도 대단하고, 지금도 끊임없이 이 시대의 트렌드와 감성을 우리만의 표현으로 녹여내는지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