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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y 05. 2022

선택지에 실패가 없을 때

직장인, 다시 공부합니다 04 - 성공이 "정상" 실패가 "비정상"이라면

몇달 전 브런치에 다가올 시험에 대한 공부 계획을 올렸다.


캘리포니아로 이사 오기 전이었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하기 전이었다.


이사를 준비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고, 육체적인 노동이 시작되자 공부는 자연스럽게 멈췄다. 이사를 준비하는 내내 이전 직장에서 일도 하고 있었고, 사실 나는 예전 직장과 새로운 직장 사이에 잠시도 쉬지 않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직장에 관해서는 다른 시리즈를 만들어 더 많은 얘기를 할 것 같지만, 새로운 일을 배우다 보니 일을 시작한 3월 21일 이후부터는 스스로 시험 공부를 하는 것 보다 일자리에서 많이 배우는 것을 우선시 했던 것 같다. 그래서 2월 말부터 지금까지는 계획 했던 것들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제 시험까지 3개월도 남지 않았다.


보통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을 위해 많은 학생들이 3개월 정도 매일매일 적어도 8시간을 공부한다고 알고 있는데, 지난 해 7월달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53%밖에 되지 않고, 지난 해 2월달 시험은 심지어 37% 밖에 되지 않는다 (2020년은 27%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정말 무서운 숫자 아닌가. 시험 친 사람들 중 3/4은 떨어졌다니).


시험에 떨어진다고 해도 로펌에서 해고당하지는 않지만 (지금 로펌은 한번 더 기회를 준다고 했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변호사들이 시험을 한 번 보고 바로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사실상 내가 시험을 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능성은 모두가 상상 조차 하고 있지 않기 떄문이다. 이런 로펌에 다니고, (재수없게 들리겠지만) 나의 이력서에 적힌 로스쿨과 학부를 본다면, 나같은 사람은 "당연히" 이 시험도 잘 통과 할 것이라고 모두 생각을 한다. 나의 인생에 다른 모든것들을 유유히 해결했듯이, 이것도 나는 당연히 성공적이게 마무리 지을 것으로.


때로 인생을 뒤돌아보면 모든것이 자연스럽게, 적당히 노력하며 이루어진 것 처럼 느껴질수가 있지만 책상에 다시 앉으니 새삼 기억이난다.


그 어떤 것도 편하게 얻어진 것은 없었다. 호수위에 백조는 우아하고, 한가하고, 여유있는 것 같지만 떠 있기 위해 호수 아래에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백조처럼 - 매순간 나의 노력은 "적당"한적은 없었고, 항상 치열했다.


그리고 사실 이제 조금씩 지친다는 고백을 하고 싶다.


내 주변에 나랑 비슷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그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정말 치열한 노력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아래) 이 모든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일도 열심히 하면서 따로 공부도 하려니까 내가 과연 그렇게 영혼을 갈아넣는 노력을 또 한번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시험을 통과 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상상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상을 하는데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이상하게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내가 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항상 성공하는", 혹은 실패라는 것은 당연히 선택지에 없는 사람이긴 싫다. 초등학교 졸업하는 순간부터 계속 달려온 내가 어쩌면 잠깐 멈추고 "그래, 실패하는게 비정상 한게 아니야"라고 스스로에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나는 상위 10%, 상위 25%... 이런 타이틀만이 정상으로 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미국에서 좋은 명문대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자, 그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들 가운데 또 다른 멋진 일들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나는 이런 "상위 몇퍼센트"의 사람들만이 주변에 가득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상위"라는 말은 그 밑에 그 기준을 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고,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만 해도 "정상"적인 상황은 과반수를 넘는 불합격이다.


최근 가장 많이 하는 생각도 이렇다 - 1등이 될 필요 없다.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자.


물론,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도 다가오는 시험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긴 할 것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노력을 해야 행복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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