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다시 공부합니다 05 -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건 이제 그만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게 조금씩 지쳐간다.
내 기준에 그렇게 열심히 하는것도 아닌데, 내 몸이 벌써 여러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일단 살이 4키로 쪘으며 (충격받고 부랴부랴 빼서 글을 쓰는 지금 이 상황에서는 2키로를 뺐다) 호르몬성 여드름이 하나 둘씩 턱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순수 공부시간을 보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일을 하는 평일엔 2-3시간씩 공부하고, 일을 안하는 날들은 6시간에서 8시간 정도를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양이 적을수록 마음이 불안해진다.
어쨌든 공부를 많이 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확실히 내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이유는 이렇다. 일단 일하기 전 아침이나 일 끝난 저녁에 운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공부를 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운동을 하지 않는다 (샤워까지 생각하면 기본 한시간 반은 소모하니).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시작해도 집중이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속도가 아주 더디게 나간다.
그렇게 속도가 더디게 나가면 저녁 11시나 12시 - 취침시간이 다 왔는데도 그래도 못한 공부를 15분 정도 더 하려는 생각에 결국 책상앞에 앉아있다 새벽 한시나 두시쯤에 잠이 들게 된다. 그러니 피부가 제대로일 수가 없다.
예전에는 이렇게라도 꾸역꾸역 공부를 하면서 그래도 목표한 것들을 다 끝냈다면, 이제는 그럴수없다. 뉴욕 변호사 시험을 공부했을때가 2018년이다. 4년 전이었고 그때나는 20대였다. 그럴만한 에너지가 있었다. 캘리포니아 변호사시험은 뉴욕시험보다도 공부할 시간이 적으니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하고 순수하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3주밖에 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 더 부담이 되고 불안한건 사실이지만, 이제 더 이상 그때처럼 "독하게" 공부하고 싶지 않다.
사실 나는 독하다는 말을 좋아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이 표현은 부정적이게 사용되지만 나는 그 바탕은 "열정적이다" 그리고 "멘탈이 강하다"와 같다고 생각한다. "외유내강"의 이 "강함"도 독함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사에 느긋한 사람도 어떤 분야에는 (음악이든, 스포츠든) 분명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대하는 태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는 항상 독하게 공부했던 것 같다. 뉴욕 변호사 시험을 공부할 때는 3개월 동안 거의 매일 아침 도서관에 가장 첫번째로 도착했다. 도서관에 들어서면서 내 발걸음과 함께 불이 하나 둘 씩 켜지는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12시까지 쭉 공부하고, 잠깐 점심을 먹으러 나온 뒤, 다시 1시부터 도서관 문이 닫는 5:30 까지 공부를 하고 잠깐 저녁을 먹고 또 7시부터 10시까지 그 날 공부했던 것들을 쭉 리뷰했다. 다시 돌아봐도 참 스스로가 대견하다.
그런 내가 이제 더 이상 "공부"에 대해서는 독해지고 싶지 않다. 공부의 기본이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게 얼마나 내 몸에 안좋은지 이제 직접 겪어보니 더 이상 그러지 못하겠다.
답답해서 오늘 저녁 11시에 런닝머신에서 뛰면서 다짐했다. 이번 여름, 내 목표는 "적당히"라고.
원하는 만큼 진도를 못나갔다고 해도, 나 스스로에게 적당하다고 얘기하고 잠 들기.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공부해야된다는 압박감을 버리고 내 건강부터 먼저 챙기기.
목표를 위해 지금의 나를 버리지 않기.
이렇게 해서 행여나 변호사 시험에 붙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한번 더 기회가 있고, 그 기회마저 날려버린다 해도 나는 뉴욕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변호사다. 지금 가장 중요한건 내 건강과 매일 조금이라도 느껴야 하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