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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Jul 22. 2022

최선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

직장인, 다시 공부합니다 09 - 우리가 열심히 한 거랑 다르지

가끔 기억나는 내가 고등학교 때 겪었던 이야기이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쯤 어쩌다 반에서 꽤나 예쁘게 생긴 아이에게 화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연예인을 꿈꾸던 아이였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이번 다가오는 화학시험을 80점 이상 받으면 서포트해주겠다고 해서 나에게 도움받고 싶다고 말했다. 제대로 돈을 받고 하는 과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몇 번이나 그 애 집까지 찾아가서 시험 안에 나올 내용들을 짚어주었었고, 우리는 꽤 친해졌었다.


시험 치기 전, 내가 공부를 했냐고 물어볼 때마다 그 애는 나에게 "열심히 공부했다"라고 얘기를 했었다.


나는 그 애가 당연히 80점을 넘을 줄 알았다. 나의 그 당시 기준으로 80점은 거의 이름 쓰면 받는 점수였기 때문이다. 


시험 결과가 나온 날, 나는 너무 놀랐다. 그 아이가 나에게 말해줬다. F를 받았다고.


나는 그 아이에게는 뭐라고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고, 그 옆에 그 아이의 친한 친구들이 위로를 해주고 있었다.


나도 그 아이한테 다시 갈까 말까 고민하던 중, 내 옆으로 나와 항상 전교 1등을 다투던 친구가 다가왔다.


"몇 점 나왔대?" 


친구가 물었다.


"F 받았다는데... 난 이해가 안가."

"뭐가?"

"공부 열심히 했다고 했거든. 근데 어떻게 F를 받을 수가 있어."


그 친구가 고개를 저으면서 나한테 했던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열심히 했다는 거랑 쟤가 열심히 한 거랑 다르지. 쟤는 하루에 두 시간 공부해도 열심히 했다고 해. 나 작년에 걔랑 꽤 친하게 지냈어서 알아."


***


나는 그때까지 "열심히"라는 기준은 모두에게 같을 줄 알았다. 한국인 특유의 마인드 인지 몰라도 나의 열심히는 체력이 방전될 때까지 끝까지 매달리는 게 "열심히"였다. 사실 아직도 누군가 열심히 했다고 하면 나의 기준으로 생각해서 "와 진짜 열심히 했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게 일상이다.


오늘 러닝머신에서 뛰면서 사실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


5일 뒤가 시험인데, 지금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점인데 러닝머신에서 음악 들으면서 뛸 여유가 있다니.


난 과연 이번 시험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며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 그 고등학교 때의 경험이 생각났다.


내 기준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다른 사람들 기준에서는 내가 200%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너무 스스로에게 뭐라고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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