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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Sep 06. 2022

준비가 안된 시험을 본다는 것은

직장인, 다시 공부합니다 10 - 그래도 수고했어

짧게 말하자면, 내가 나를 과대평가 하다 생긴 번아웃이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라는 말은 어쩌면 한국 사회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 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평생을 노력파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온 나 또한 마찬가지로 이 글귀를 좋아했다.


7월 말에 있었던 캘리포니아 시험을 위해 누구보다 더 일찍 준비하고, 더 많이 준비하고,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고 싶었다. 그리고 시험을 친 다음에 내가 여태 미뤄왔던 것들을 다 할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1월부터 설정했던 시험을 위한 계획을 2월부터 5월까지 새로운 도시로 이사하며, 또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하며 계획에서부터 너무 멀어졌고 스스로를 긴 고독에 가뒀다. 새로운 도시에 이사를 하며 이 도시를 둘러보기도 전에 매 주말마다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고, 결과적으로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아무와도 대화하지 못하고 집-직장-시험공부 이 루틴에 사로잡혀있었다. 문제는 시험공부를 한다는 기간 동안 오히려 집중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7월 초에 회사에서 시험을 위한 휴가 25일을 받아 공부할 스케줄을 만드니, 보통 3개월 내내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너무 터무니없이 공부할 기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주에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째 주 까지도 그래도 하루하루 노력했던 것 같다. 문제는 셋째 주에 시험 범위가 내가 공부해오던 것보다 너무 크게 느껴졌고 "이미 통과하지 못할 것 같은 시험을 공부해서 뭐하지"라는 생각에 빠졌다.


여기에 너무 오랫동안 그 어느 누구와도 대화하지 못한 외로움이 파고들었고, 내 인생에 가장 힘든 우울함에 허우적거렸다. 부모님과 통화 중에 이렇게 얘기했다. 


그냥 어느 순간에도 툭 울 것 같다고. 누군가 지금 나를 진단하면 우울증이라고 얘기할 것이라고.


여태 시험을 치면서 힘들었던 기억들이 계속 생각났고, 결과적으로 시험 보기 이틀 전부터 이 시험은 통과 못할 시험이라고 생각하고, 7월 시험은 모의고사 보듯 들어가서 봐야겠다 -라고 결심을 했다. 


심리적으로 살기 위해 그렇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시험에 들어가서 시험 문제를 열기 전까지 그렇게 평온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떨어져도 된다, 떨어져도 괜찮다고 스스로 결심을 하고 맞이한 시험은 여태 봤던 시험과 정말 다른 경험이었다.


첫 번째 서술형 에세이 문제를 생각보다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했고, 그나마 만족스럽게 나오자 나머지 에세이들도 열심히 썼다. 물론 시험을 통과할 정도로 잘 썼을 것 같진 않다. 그래도 생각보다 잘했고,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사실 시험을 준비하던 셋째 주에 그냥 코로나 걸려서 시험을 못 보겠다고 말할까, 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포기만은 하지 말고 어떻게든 보자고 마음먹었었다. 시험장에 들어가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도 그 상황 안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하기로.


둘째 날은 객관식 문제 200개를 푸는 날이었는데, 시험을 풀면서 모르는 문제가 너무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풀었다.


시험장에 나올 때 동생이 데리러 와줘서 정말 감사했다.


***


솔직하게 말하자면 브런치에 이 시험을 위한 노력들을 기록하는 시리즈를 처음 쓸 때는, 정말 스스로가 보아도 멋진 노력의 흔적들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노력파"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시험을 준비하지 못했고 브런치 초반에 썼던 글들을 지금 보면 약간 아프고 많이 민망하다. 11월에 나올 시험 결과가 좋지 않을 것도 거의 확신하다.


이렇게 준비가 되지 않았던 시험을 친 건 처음이었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 한 달이 지난 지금이라도 말하고 싶다.


가끔 이럴 때도 필요한 것 같다고.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를 너무 늦게 풀어주어서 미안하다고.


결과와 무관하게, 그래도 수고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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