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2년 전 즈음, 나는 친구들에게 작은 고백을 하듯 얘기했다. 글을 쓰고 싶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2020년 3월 그때 당시 나는 <쌈, 마이웨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드라마는 2017년 작품이었다) 거기서 나온 대사와 내용에 대해 설명하다 이런 얘기가 나왔다. 김지원과 박서준이 주연으로 나온 그 드라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 "청춘" 그리고 "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드라마였다. 그 안에 핵심은 "무엇이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 당시 뉴욕 대형 로펌 2년 차 변호사였고, 일을 나름 좋아하고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백하듯 말했다. 사실 나를 가장 가슴 뛰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일은 글을 쓰는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있던 마음 착한 친구들은 그럼 언젠가 글을 읽고 싶다고 얘기를 했고, 나는 사실 글은 자주 쓰는데 부모님과 동생에게만 보여준다고 얘기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학교 신문사에서 글을 자주 썼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글을 쓰고 보여주는 일이 적어져서 이젠 누구에게 내 글을 보여주는데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단 적어도 그 친구들에게 그런 고백을 했기에, 나는 조금씩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끄적거리며 쓰던 글들을 조금씩 보여주려 노력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고, 등록하고, 브런치 서랍에 글 하나를 쓰고 덜컥 작가 신청을 했다. 결과는 당연히 떨어졌지만 그 당시에 나에겐 살짝의 실망감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글로 쓰는 글이든, 영어로 쓰는 글이든 나름 "글 잘 쓴다"라는 칭찬은 꾸준히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은 브런치에 쓸 수 없으니, 어쩌면 더 큰 용기를 내어 내 지인들에게 보이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일기 형식으로, 때마다 원하는 글을 끄적거려 올렸다.
2021년, 브런치에 조금 더 글을 쓰고 나서 작가 신청을 다시 하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끊임없이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2021년에 적어도 브런치 책 한 권을 엮고 싶었다. 한 명밖에 보지 않아도 나를 위해, 그리고 내 글이 도움이 될지 모르는 그 한 명을 위해 정말 행복하게 글을 썼다.
중학교 때 특히 열심히 쓰던 시도 다시 쓰게 되었다. 2022년 봄, 교회에서 진행하는 "마태복음 프로젝트"는 나에게 시를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글쓰기는 아주 조금씩 다시 나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2022년, 새로운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로 온 이후 글을 거의 쓰지 못했다. 새로운 직장과 도시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깊은 외로움에 잠겨 있었다. 뉴욕에서도 1년 정도 정착 후에나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 어쩌면 글을 쓰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여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쓰는 것만큼 좋은 글 읽는 걸 좋아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항상 독자로부터 내면을 보게 해서 좋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 그 사람 자체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왔다는 게 드러나서, 독자도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한다.
최근 끝낸 그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정말 근사한 문장 하나를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날마다 달리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 자신은 오래도록 뭔가 좀 잘 알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달리다 보면 물론 몸은 건강해집니다. 지방은 줄고 균형 잡힌 근육이 붙고 몸무게도 조절됩니다. 그러나 꼭 그것만은 아니다,라고 나는 늘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깊은 곳에는 좀 더 중요한 뭔가가 있다고. 하지만 그 '뭔가'가 무엇인지, 나도 확실히 알지 못했었고 나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설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의미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채 우선 이 달리는 습관은 끈질기게 유지했습니다. 삼십 년이라면 상당히 긴 세월입니다. 그만한 세월 동안 줄곧 한 가지 습관을 변함없이 유지하려면 역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가. 달린다는 행위가 몇 가지 '내가 이번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일'의 내용을 구체적이고 간결하게 표상하는 듯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문구는 지금도 나에게 일종의 만트라 주문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라는 것."
그가 말하는 '이번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그 표현에 가슴이 뛰었다.
나는?
이번 인생에서 나는 무엇을 꼭 하고 싶지? 나는 무엇을 꼭, 꾸준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사실, 춤이었다. 춤은 어쩌면 글 쓰는 것 보다도 더 많이 사람들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이야기를 들었고, 춤을 잘 출 때 - 그리고 좋은 안무를 볼 때 -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작곡/편곡을 공부한 적도 있고 음악 자체를 디테일하게 듣는 편인데, 춤은 내가 음악을 듣고 느끼는 것을 시각적으로 또 미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다음으로 든 생각이 글쓰기였다.
책을 출간하는 작가가 된다면 물론 뿌듯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글 쓰는 것을 내 인생에 조금 더 깊게 들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춤 보다도 어쩌면 저 문장에 해당된다고 느꼈다. 글쓰기야 말로 내가 이번 인생에서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일 것이다,라고.
자연스럽게 나는 글에 대한 책, 그리고 글 쓰기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임재성의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7세기 중국 당나라 서예가 구양수의 글에 관한 삼다론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 글을 잘 쓰는 비결이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나는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어떤 형태든, 매일 (혹은 거의 매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건 내 인생에서 아무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니까.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