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의 기록
나는 아마 재작년부터 자연이 꼭 사람과도 같다고 느꼈던 것 같다. 순환하는 계절들을 보면서 사람에게도 계절처럼 꽃이 피고, 활기를 띠고, 고독하거나 쓸쓸하고,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준비를 하는 순간이 있다고. 그러면서 이따금씩 나는 지금 내가 어떤 계절에 와 있는지를 고민한 적이 있다. 요즘은 허리를 다친 이후 재활을 위해 산책을 시작하게 되면서 내가 꼭 겨울에 와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지고 다음을 준비하는 계절. 산책을 하는 동안 나의 계절과 실제 계절이 맞물렸다는 걸 느끼면서 어쩌면 지금 나는 겨울나무의 가지치기 과정을 겪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막막한 몸을 이끌고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산책이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산책은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까지도 서서히 변화시켜 주고 있었다.
처음 아픈 몸을 이끌고 산책을 할 때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어 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해의 움직임과 구름의 모양을 관찰했다. 어느 날은 햇빛이 따스해서, 구름이 예뻐서, 마음에 드는 구름 모양을 발견해서, 늘 똑같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하늘이 매일 다른 감상을 주는 게 좋았다. 나는 가끔 산책을 하는 중간마다 걸음을 멈춰 서기도 했는데, 하늘이 맑은 날에는 햇빛 아래에서 눈을 감고 따뜻한 빛을 받는 것만으로도 그 기운이 내 몸 곳곳으로 스며들어 그 순간만큼은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듯 매일 걷는 길은 같아도 주변 풍경들이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나는 점차 의무적으로 걷던 산책에도 조금씩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늘을 관찰하며 생겼던 흥미는 자연스레 땅 위의 관찰로 이어졌다. 그중 제일 눈이 간 것이 나무였다. 이제는 겨울이 성큼 다가와 앙상하게 가지를 드러내고 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잎이 남아 있는 나무가 있었다. 나무의 이름은 낙우송. 다른 나무들은 다가오는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 가지치기까지 해 주고 있었지만 이 나무만큼은 처음보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도 오랜 기간 단풍을 연상시키는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가지만 남은 다른 앙상한 나무들과 다르게 유일하게 색이 있는 것이라 나는 이 나무에 애정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풍성하던 낙우송마저 잎이 떨어져 조금씩 가지가 드러나는 게 보일 때면 잘 걷다 가도 가끔은 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내게는 마치 낙우송이 마지막 잎새와 같은 느낌이라 이제는 정말 겨울이 찾아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낙우송 밑에 차츰 쌓이는 붉은 잎들을 보면서 나는 계절감을 느끼고 자연은 순환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동시에 고민했다. 지금 계절이 겨울이라면 지금 나의 계절은 어디쯤에 와 있을까. 나는 늘 자연의 순리대로 계절의 순환을 반복하는 것이 어쩌면 사람의 인생과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중 사람의 인생과 가장 가깝게 빗대어 표현할 수 있는 게 바로 나무라고 생각했다. 나무는 봄 여름 가을 동안 무수하게 성장하며 다채로운 형상을 보여 주는데 이렇게 쉴 틈 없이 달려오던 나무도 분명 휴식을 가지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 그 시기가 바로 겨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나무들은 이때 가지치기라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가지치기는 멀쩡한 나무에 상처를 내는 행위나 다름이 없지만 나무의 수분기가 적은 겨울은 그런 상처가 가장 잘 아무는 계절이며 가지치기는 나무를 더 튼튼하게 만들고 잎들이 풍성하게 자라나기 위해서는 필수라고 한다. 겨울이 부쩍 다가온 지금, 어쩌면 나도 겨울나무의 가지치기를 거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허리를 다치고 난 후 긴 시간 고통스러운 통증을 겪으면서 내 일상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한동안 괴로운 나날을 보냈었다. 약과 통증에 오랜 기간 찌들어 버린 내 몸은 마치 가지치기를 한 나무처럼 상처투성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하고 애틋했기에 불안에 떨고 있는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산책을 시작했다. 다음 계절을 준비하기 위해 가지가 꺾이는 아픔을 묵묵히 견뎌 내는 겨울나무처럼, 나도 나의 시련을 내 방식대로 이겨 내 나한테도 따뜻한 봄이 찾아오도록.
애초에 재활을 위해 시작한 산책이었지만 산책을 하는 순간만큼은 불안과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자연의 맑은 기운을 몸속에 담으며 내가 치유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산책에서 비롯된 맑은 시선들은 이제 일상으로까지 이어져 일상 속 아주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랩에 쌓인 새우튀김을 만져 보다 튀김옷의 촉감이 이질감이 드는 것에도, 아파트 근처 텃밭에서 할머니께서 뽑아 쌓아 두신 무를 보는 것에도 소중함을 느끼고 웃음이 나왔다. 이렇듯 순간에 드는 여러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내 일상은 전보다 더 충만해지고 풍족해졌다고 할 수 있다. 작고 소소하지만 내게는 내가 지킬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내 일상이었다.
산책을 하며 지금 나의 계절은 어디쯤일까 고민했던 내 고민의 답은 겨울이었다. 나무가 가지치기를 해서 더욱 건강하고 튼튼해지듯, 나 또한 지금 겨울나무와 같은 과정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멀쩡하던 나무의 가지를 자르듯 분명 아프고 괴로운 시기이지만 나는 그러한 과정을 내 방식대로 꿋꿋이 이겨 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하루를 무탈히 보낼 수 있음에, 작고 소소하지만 일상 속 소중한 것들에 모두 감사했다. 비록 내 허리 상처는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날이 추운 겨울은 나무의 상처가 제일 잘 아무는 계절이다. 나의 상처 또한 나무에 새살이 돋아나듯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아물 것이고, 그러한 상처로 인해 봄이 되면 내가 더욱 풍성하게 피어나리라는 걸 나는 이제 믿어 의심치 않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산책을 하면서 나의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