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5년 23일 작성, 평정은 결국 사랑을 위해서
어느 인디언 부족의 성인식은 다소 특별하게 치러진다. 이 성인식에 참가하는 인디언은 옥수수 밭을 가로지르며 가능한 한 가장 큰 옥수수를 따야 한다. 하지만 옥수수를 딸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뿐으로, 과거에 딴 옥수수가 아무리 작아도, 지나가다 더 큰 옥수수를 보더라도 이전의 옥수수를 대체할 수 없다. 이 게임은 사실 수학자들이 '언제 따는 옥수수가 가장 합리적으로 큰 옥수수인가?'를 셈 해 본 수학적 난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게임의 수학적인 정답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옥수수 밭 실험이 결국 인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선택들의 속성의 핵심과 맞아떨어진다는 데 있다. 단 한 번의 기회로, 과거를 바꿀 수 없고, 더 큰 옥수수의 유혹에 상시 부딪힌다는 점이다.
나는 2021년에 사랑보다 평정이 중요하다는 글을 썼다. 그 평정의 끝은 나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예컨대 이런 글이다. 나는 마약성 진정제를 습관적으로 복용하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거나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런 절제들이 지켜주는 것이 자기 자신의 평정이라고 썼다. 그것이 사랑보다도 나를 지켜주는 평정이기에.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글을 다소 납작하다고 생각한다. 삶을 입체적으로 본다면 자기 자신의 안정만을 위해서 살기에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에.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삶에 대해서 책임지거나 선택한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뜻이니까. 정확히는 사람들은 일 분 일 초 이 옥수수 밭을 이 순간마다 빠르게 지나가고 있단 뜻이고, 삶에서 내가 쥔 옥수수보다 계속해서 더 큰 옥수수에 대한 마주침을 겪는다는 뜻이니까. 만약 옥수수를 미처 따지 못한 삶이라면 아직 쥐지 못한 옥수수에 대한 초조함을 맞닥뜨리는 과정이다. 삶이란, 결국 어떤 옥수수에게 나의 삶을 바칠 것인가 선언하는 시간이다. 그것이 가정이 되었건 배우자가 되었건 직업이 되었건 간에.
우리는 이미 선택한 삶들에 대해 충실하고 이런 대부분의 것들에 대한 충성을 지켜야 한다. 아무리 매력적인 여자가 나타나도 우리는 집 안에서 늘어난 운동복을 입은 와이프를 버릴 수 없다. 만일 그 매력적인 여자가 사랑을 속삭여도 우리는 이미 선택을 했다. 그래서 사랑보다 평정이 중요해지는데, 그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미 딴 옥수수들을 지키기 위해서이고, 그 옥수수들의 낱알들은 한 때의 나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사랑에 기반한 것이니, 결국 내 평정은 사랑을 위한 것으로 회귀한다.
여러분은 어떤 옥수수를 따고 있고, 어떤 더 큰 유혹을 받으면서도 평정을 아로새기며 오늘도 묵묵히 옥수수밭을 걸어가고 있나요? 라이킷, 구독, 댓글 모두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