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영 - 우우우린
네가 영국으로 가는 날, 우중충한 날씨에 서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 침묵이 날씨 때문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당장 서울 - 부산만 하더라도 우리가 만나기엔 깨나 성가신 거리였다. 그런데 이번엔 영국이라니, 나는 너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어제 우린 평소와는 다른 소주잔을 기울였다. 무덤덤한 척 건배를 하고 떨어지는 술 한 방울이 아까워 거침없이 털어 넣었다.
나 영국 가려고 해. 좀 오랫동안.
몇 달 전 했던 이야기가 어느새 내일이 되었다. 너를 사랑하지만 너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 같아선 가지 말라고 수백 번을 외쳤지만, 차마 너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내가 너의 족쇄가 되기는 싫었다. 네가 나의 여자이기 전에 너란 존재 자체니까, 너를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안되니까.
쿨한 척 말했다. 가서 제발 좀 어른스러워지라고. 제발. 그러고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한데 뭉쳐 머리가 복잡했다. 그런 날 바라보며 너는 머쓱하게 웃었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주 한 잔은 복권을 긁는 동전처럼 나를 한 꺼풀씩 드러내고 있었다.
너를 데려다주는 길, 한참을 걷다 보니 거리의 불은 하나 둘 꺼지고 있었다. 걸음을 늦추어 걸으며 어색한 눈을 마주친다. 그러고선 서로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웃어본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여기엔 우리뿐인 것처럼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너무 닮은 우리여서 다른 점을 더욱 사랑했던 서로였기에 더욱 애틋했다.
너의 밤엔 아침인 내가 있다. 어딜 가도 우린 다시 같은 곳에서 만날 테니 돌아올 땐 제발 어른스러워졌으면 좋겠다. 시간 나면 연락하고, 밥 제때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