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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퀸콩 Jun 13. 2024

알아차림

단순히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며칠간 브런치발행 알림을 보며 글을 쓰고 싶었지만 뜻대로 할 수 없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어쩌면 나의 조금은 지나친 식탐이 건강하게 일상을 보내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시간이 되었다.


보통의 엄마라면 밥때가 되었을 때 아이를 먼저 챙기고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아이보다 내가 먼저 밥을 차려먹는 엄마이다. 혼자 집에 있어도 대충 먹지 않고 제대로 한 끼 식사를 맛있게 해야 하는 사람이다.




밥과 관련해서 나에 대해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


20대에는 웬만한 성인남자들만큼 꾹꾹 눌러 담은 공깃밥 한 공기를 같은 시간에 다 먹고도 더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먹고도 3시간 뒤쯤이면 배가 고픈 적도 많았다.(불혹을 앞둔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대신 배가 터지게 먹고 난 이후 군것질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것을 먹을 만큼의 공간까지 밥으로 꾹꾹 눌어 담아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나는 군것질의 맛을 잘 모르고 큰 것도 한 몫했다.


요즘은 한약을 잘 안 지어먹지만 어린 시절부터 꼭 2~3년에 한 번씩 지어먹곤 했다. 어느 한의원에서 체질검사를 하게 됐을 때 나의 몸을 연비가 안 좋은 자동차와 같다고 했다.


료는 많이 먹는데 잘 안 나가는 효율이 떨어지는 자동차와 같다는 것이다. 요즘 같이 맛있는 것이 넘치는 세상에 축복받은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옛날 먹을 것이 많이 없던 시절에 태어나 자랐더라면 늘 배고픔에 시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 고충도 있다. 배고픔이 빨리 찾아오고 그것 때문에 예민해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 두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을 느껴서 과식을 할 때도 많다. 배가 고프다고 대충 때우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은데 신혼 때 그것을 알아주지 못하는 남편과 여행을 다니며 베네치아 한복판에서 서럽게 엉엉 울며 싸운 적도 있다.


wrtn 생성형 ai 이미지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식사습관과 관련된 데이터는 여기 까지였다.






하지만 지난 며칠 한 가지 더 추가된 데이터가 생겼다. 아무리 방전이 잘되어도 집어넣으면 금방금방 채워지던 배터리의 기능이 많이 떨어졌다. 2주 동안 다닌 여행 탓에 미루어두었던 계절이불 정리와 여행가방 정리, 빨래, 청소 등 집안일과 출산과 육아로 3년이나 미뤄두었던 대장내시경을 위해 약을 먹으면서 예고도 없이 나의 배터리가 꺼져버렸다.


이렇게 예고 없이 방전이 된 배터리는 조금 쉰다고 해서 금세 회복되지 않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다. 참을 없는 두통과 울렁거림 그로 인한 심각한 무기력으로 아이들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 많이 힘들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무엇인가 하겠다고 생각하고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면 바로바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게 안 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냉장고에 있는 김치찌개를 끓여서 계란말이를 만들어 먹어야지 생각을 하고 일어났지만 땅으로 꺼지는 내 몸을 보면서 꽤나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서든 기운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배달앱을 켜고 최대한 먹고 싶은 것을 찾았지만 먹을 생각조차 들지 않는 것이다.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뭐든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뿐. 그때 나의 선택은 죽이였다.


본죽_특통영굴버섯죽


이 죽 한 그릇을 먹고 났더니 두통이 점차 사라지고 일어날 기운이 조금은 생기는 듯했다. 다행히 그날 저녁은 아이들을 제대로 챙길 수 있었다.


두 그릇으로 나눈 죽 한 그릇을 다 먹고 저녁을 먹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또 배가 고파지는 것을 느꼈다. 이 배고픔이 참 반가웠다.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고 기력이 없을 당시 먹고 싶은 의욕이 다 사라지고 그냥 누워만 있고 싶었다. 움직이고 싶었지만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너무 힘들고 어려웠다.


불과 하루 전 나의 몸 상태였다. 보양식을 먹고 어떻게든 기운을 차리니 예전 같은 식욕이 돌아온 것이다. 너무 당연하고 일상적인 나의 식탐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나이를 먹고 몸이 아프고 식욕을 잃는 다면 딱 그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나의 에너지의 근원은 바로 나의 식탐 덕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순간이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다 그 이유가 있고 그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잘 알아차리고 잘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기운을 차리고 오랜만에 도서관으로 등교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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