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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Jun 20. 2022

06. 자연으로 뛰쳐나간 편집자

-농부가 된 김 편집자

자연으로 뛰쳐나간 편집자


김 생산자와 나는 길에서 만난 사이다. 당시, 난 플리마켓에서 독집잡지를 팔고 있었고, 눈 밝은 편집자였던 그는 내가 만든 잡지에 호기심을 가졌다. 그때 우리는 명함을 주고받았고 편집자라는 공통된 직업과 부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같아 친구가 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우리는 편집자로 살았다. 그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오래. 그러니까 선배 편집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입버릇처럼 귀농을 꿈꾸던 그가 이제는 책 편집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되었다. 세상에 생산자라니!! 어딘가 완전하지 않고 당당하지 않았던 편집자였던 나에게 생산자는 내 인생의 종점 같은 곳. 정말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만에 안부전화를 했는데, 못 본 시간이 무색할 만큼 정답게 수다를 떨었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농사 이야기는 생생하고 실감 났다.  진짜 환경적인 건 뭘까? 평소 유기농과 무농약 인증 농산물을 주로 사 먹지만, 가끔 의구심이 든다. 농사가 주변 환경에 맞게, 생물들과 어울리며 다양해질 권리가 있는데 유기농/무농약 인증이 농부의 자유로운 농법을 획일적으로 만드는 농법이 아닌지. 그런 이야기를 두런두런했다. 정말 쌀이 떨어져, 쌀 주문한다고 하니까 딸 선물이라며 직접 키운 쌀과 토종 감자를 보내줬다.


그렇게 겨울철 곶감처럼 한 개씩 쏙쏙 빼먹고 싶은 감자들. 길쭉한 지게감자는 찰지고 쫄깃한 맛,  껍질은 붉은 뻘겅감자는 쫀뜩한 맛(인터넷에는 분홍감자라고 나온다. 다른 종일까), 동그란 자갈감자는 달큼한 맛. 각양각색 감자들을 만지니 보드라운 흙이 내 손에 묻는다. 윤기가 차르르 흐르며 통통한 밥풀들. 입 안 한가득 먹고 있으니, 잠깐 내 인생이 근사해졌다.



도시에서 자란 나는 여전히 생산자로 살고 있는 그의 농촌생활이 상상이 안 됐다. 그렇지만 땅심으로, 농심으로 키운 쌀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생물의 소란스러움이, 생명의 재잘거림이 어렴풋이 들린다. 나는 조금 그곳에 가까이 갔고, 언젠가 나도 생산자가 되어 자신 있게 무언가를 세상에 내보낼 수 있기를.


판권지 밖으로 뛰쳐나가, 책이 가르쳐준 대로 살고 있는 그는 다른 방식으로 편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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