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아옹이는 내 롤 모델이었다. 녀석은 밥 먹고 바로 눕고 하루에 20시간을 잤다. 나머지 시간엔 창밖을 보며 멍을 때렸다. 녀석처럼 되고 싶어서 그 행보를 뒤쫓고 따라한 적이 있었다. 와이프가 화를 냈다. 아옹이는 되는데 왜 난 안되냐고 했더니, 그녀는 고양이 털 밀 때 쓰는 빗으로 내 등을 후려 치며 아옹이는 생긴 게 귀엽기라도 하지,라며 일갈을 날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스코티쉬폴드 종의 외모적 특징은 앞으로 접힌 귀였다. 귀가 접힌 것만으로도 얼굴을 순진무구하게 꾸며 귀여움은 배가됐다. 놀랍게도 스코티쉬폴드 종은 태어날 때는 보통의 귀를 가지고 있다가 2~4주경에 귀가 접힐지 아닐지가 결정된다고 했다. 사실 아옹이의 귀가 접힌 것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위해서였다. 그 외 개 짖는 소리 등 온갖 불필요한 잡소리에는 귀를 굳게 닫고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와이프는 마치 사람을 대하듯 녀석에게 말을 걸거나 잔소리를 하곤 했는데 대꾸도 하지 않고 귓등으로 흘렸다. 못 듣는 것이 아니라 못 듣는 척하는 것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아옹이처럼 살고 싶었다.
직장 생활의 생리 중 가장 추악해서 진절머리가 나는 일은 남의 뒷담화를 나누는 것이다. 오죽하면 뒷담화를 깐다는 표현을 썼을까. 남의 단점은 부각시키고 불행에 환호하며 말을 전해 날랐다. 안 좋은 일일수록 구전되어 옮겨질 때마다 새롭게 각색되기도 하고 거대하게 확대되기도 했다.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것은 눈앞에 있을 때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웃다가 뒤에서 비수를 꽂는다는 사실이었다. 개그 프로그램에 종종 등장하는 연출이 있었다. 대여섯 명이서 화기애애하게 서로 칭찬을 하며 웃다가 한 명씩 번갈아 자리를 뜨면 돌변하여 그 사람의 흉을 보는 장면이었다. 결국 뒷사람은 곧 자기 욕을 할 것을 알고 소변이 급해도 자리를 뜨지 못해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곤 했다. 그것은 굉장히 신랄한 풍자인 것이다. 나쁜 말로 남을 흠집 내는 일은 마치 담배가 몸을 병들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포기할 수 없는 쾌감을 선사했다. 그렇기에 추잡한 짓일뿐더러, 마음을 병들게 하는 걸 알면서도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상사를 향한 욕, 싫어하는 동료의 허물을 이야기하느라 주위를 두리번거린 것이 몇 번이었던가. 와이프와 나는 연애하기 전부터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었는데, 남의 헐뜯거나 뜬소문을 주워 나르는 것을 본 적이 없어 마음에 들었다. 인격이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자기가 알고 있는 남의 비밀 이야기를 혼자만 알 수 없어 흉악한 언어로 공유할 바에는 오직 저밖에 모르는 냉혈한이 되는 게 나았다. 아옹이는 식탐이 강하고, 털도 많이 빠지고, 코도 골 줄 알며(어쭈, 제법인데), 입냄새도 나고,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하지만 자기가 싼 똥은 모래로 잘 덮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다. 고양이가 대소변을 모래로 덮어 숨기는 이유는 포식자를 상대로 자신의 채취를 숨기기 위함이었다. 오늘 흘린 말이 나를 추적하게 만드는 흔적이었다면 벌써 몇 번은 사냥당했을 것이다. 가끔은 아옹이처럼 귀를 좀 닫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