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혹시 INFP니?
넌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 모양이니. 대한민국의 자녀라면 부모님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봤을 말이다. 제가 이 모양 이 꼴인 건 어버이가 물려주신 유전자 덕분이잖아요,라고 말하면 정답이지만 공연히 매를 벌 필요는 없다. 사춘기의 나는 내가 가진 성격, 가치관, 기질 등 소위 성향이라고 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90년대는 인터넷에 검색할 수도 없는 시절이었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적지 않은 날에 잠들지 못한 채 노트와 펜을 들고 무언가 쓰려했지만, 어떻게 써야 되는지, 심지어 무엇을 써야 되는지도 몰라 백지에 투명하게 절망만을 기록하곤 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작고 보잘것없는 자신의 유한성과 허무성을 인지하고 비관의 구렁텅이에 몸을 담그는 일뿐이었다. 인간은 원래 유약한 존재라고, 넌 원래 그런 색깔을 갖고 태어난 거라고 설명해 줬더라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하다못해 누군가 너 혹시 INFP니? 인프피들은 원래 그래,라고 얘기해 줬더라면 그 시절을 견뎌내는 게 조금은 수월했을까. 물론 지금도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감정해서 정의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되풀이되는 시행과 착오 속에서 어렴풋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랄까.
인간의 인격 형성에 있어 선천적 요소와 후천적 요소, 둘 중 어떤 것에 영향을 더 많이 받을까. 프로이트는 성격발달에 있어 선천적 요소보다는 후천적 요소를 중시하였다. 특히 5세 이전 시기를 성격 발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칭하였고, 그 이후에는 여러 자극이 제시된다 할지라도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양이의 성격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도 사회화 시기의 후천적 경험이었다. 이를 테면 태생 직후 엄마 고양이와 친밀도가 높을수록 사회적 학습 능력이 뛰어났다. 형제 고양이가 있다면 행동을 모방하는 학습 능력이 빠르고, 물거나 공격할 때 힘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이때 학습이 되지 않는다면 커서도 무는 횟수와 강도가 높은 경향이 있다. 자신이 물리거나 맞은 적이 없어 어느 정도 세기가 아프지 않은 지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었다. 신기하게 아옹이와 다옹이도 서로 사냥놀이를 하며 싸울 때 발톱을 세우지는 않았다. 사람이 손가락으로 장난을 칠 때도 시늉만 할 뿐 아플 정도로 물지는 않았다. 생후 2~7 주령 때 사람과의 접촉은 고양이 성격 형성과 친밀도를 좌우하고 낯선 공간이나 장난감 등에 적응하는 능력도 키워줬다.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면도 있다. 털 색에 따라 성격이 각각 다르다는 연구도 수차례 진행되었다. 가설에 따르면 치즈 태비라 불리는 갈색 고양이는 친밀도가 높고 상냥하다고 했다. 또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고양이는 애교가 많으며, 흰 고양이는 경계심이 높아 겁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무기력한 나를 보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유일한 낙은 아옹이와 다옹이를 보는 일이었다. 다옹이는 애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자발적 스킨십은 원하지 않아 아무 때나 곁에 두기 힘들었다. 아옹이는 겁이 많아서 사람이 가까이 오거나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망치는 것마저 귀찮아해서 상자에만 담아두면 언제든지 옆에 둘 수 있었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아옹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도 모르게 사랑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순간 내가 고양이라면 녀석들처럼 골골골 소리를 낼 것 같았다.
5세 이전의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그 시기에 기질과 성향을 형성했던 환경은 과연 어떠했을까. 만약 그 조건이 달랐더라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런 별 의미 없고 끊임없는 질문과 공상으로 잠을 청하곤 했다. 인프피들은 공상을 즐겼다. 본인이 원하는 이상향의 세계를 아주 천천히 만들어갔다.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이 무력한 패배자 같아서 혐오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족하며 살기로 했다. 자, 벌써 이 쓸모없는 공상이 한 편의 글이 되었다. 물론 그 글에는 힘이 없고 가격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조악하지만. 어차피 멈출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더 근사한 공상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