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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옹이 다옹이의 리즈 시절

누구에게나 전성기가 있었다

by 아옹다옹하다



누구에게나 전성기가 있다. 요즘 말로는 리즈 시절이라고들 했다. 인터넷상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황금기, 과거 전성기, 또는 왕년을 가리키는 유행어였다. '내가 왕년에는'으로 시작되는 문장을 자주 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는 그들은 안쓰럽고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은 변태적 자기애로 변질되어 있었다. 대부분 지금은 왕년과 같지 않은 초라한 시절을 보내고 있고, 왕년을 추억하고 되새김질하며 스스로 위안을 얻는 부류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 전성기조차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며 본인이 꾸며낸 판타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왕년에 잘 나갔던 사람은 대개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 혹여나 실패를 경험했어도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곤 했다. 지금 이 타이밍에 얘기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나도 ‘왕년에는’ 엄청나게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비록 전성기가 너무 빨리 끝나버렸지만. 그것은 추억팔이도 아니고 허언증도 아니고 객관적 사실이다. 다만 중학교 때 이사하다 사진첩을 잃어버려서 입증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모든 동물은 아기 때가 가장 예뻤다. 다소 포악하고 징그럽게 생긴 동물조차도 아기 때는 이상하리만큼 앙증맞고 사랑스러웠다. 인간이 세속적으로 규정해 버린 미의 잣대로 바라볼 필요 없이 충분히 아름답고 성스럽기까지 했다. 보잘것없이 작고 유약한데도 눈부신 이유는 본연의 것 그대로를 담은 순수함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옹이와 다옹이를 처음 만난 날 이미 오 개월령이었는데 아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버린 상태였다. 펫 숍에서 애완동물을 분양할 때 어리면 어릴수록 가치가 높게 매겨졌다. 추측건대 당시 아옹이와 다옹이는 분양할 적기를 놓친, 오 개월이 지나도록 구매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상품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근거로 비용도 꽤 할인받았다. 외모와 품종, 나이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격이 매겨진다는 사실이 좀 거북했다. 원래는 한 마리만 데려올 계획이었다. 아옹이가 서운할까 봐 말하진 않았지만 와이프는 다옹이만을 원했다. 그녀는 하양과 노랑의 밝은 색 계열을 선호했다. 그에 비해 아옹이는 마치 새끼 곰처럼 잿빛 털이 무성하고 둥글둥글했다. 겁먹은 듯한 커다란 눈에서는 마치 나는 바보다,라고 말하는듯한 백치미가 뚝뚝 떨어지는데 주둥이는 또 왜 그렇게 귀여운지. 우린 동족에게서만 느껴지는 동질감에 자석처럼 이끌렸다. 상처받은 것들은 서로를 귀신 같이 알아봤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말했다. 얘도 데려가자. 입양을 오래 계획한 것이 아니라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미숙한 부분이 많았다. 녀석들은 내게 넘치도록 과분한 존재였으나 성격적인 면에서 꿈꾸고 기대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사람을 잘 따르고 애교가 철철 넘치는 개냥이를 원했다. 사실은 고양이란 동물을 잘 이해하지 못한 무지한 착각이었다. 나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가 느꼈을 실망감과 배신감을 헤아려 보았다. 녀석들에게 불만족하는 것은 주제넘은 자기모순적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녀석들을 사랑하자고 마음먹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내 리즈 시절은 과연 언제일까 생각해 보았다. 어리고 귀여웠던 그 무렵이었을까.(끝까지 이런다.) 소위 잘 나갔던 과거의 어느 시점이었을까. 씁쓸하게도 잘 나갔던 적이 없는데. 아니면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전성기라고 칭할 수 있을까. 사회적, 경제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인격적 성숙을 이루었을 때를 황금기라고 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 과거는 시간의 연속성 속에 놓인 난해한 개념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연속성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하며 사는 게 바로 인간이란 존재였다. 아옹이와 다옹이는 아기 때도 예뻤지만 현재는 지금 대로 또 다르게 아름답다. 모든 존재는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 마땅하며, 살아 있는 그 자체로 칭찬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우리의 전성기는 과거의 한 시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아니 생의 매 순간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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