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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사랑해도 닮는다

결혼기념일

by 아옹다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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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엔 아옹이와 다옹이의 생일이 있었어. 작년에 녀석들을 데려온 건 우리가 결혼하고 한 것 중 제일 잘한 일이었어. 숙식 제공과 화장실 청소 등 단순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정서적인 유대와 안정, 만족감을 선물로 받았으니 우리 입장에서는 수지맞은 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녀석들이 없었다면 집은 여전히 공감과 소통이 부족한 공간이었을 거고, 지금처럼 웃음소리도 잦지 않았을 거야.

오늘은 우리의 세 번째 결혼기념일이야. 결혼하기 전처럼 손 편지를 건네면 네가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주 쓰지 못해서 미안하다. 편지를 쓰다 보면 종종 자괴감에 빠지곤 해. 이미 하고 싶은 이야기, 잘 쓸 수 있는 문장은 다 소진해 버려 한계에 부딪힌 중견작가처럼 무엇을 써야 할지를 몰라 쩔쩔매게 돼. 내가 하고자 하는 말도 결국은 거기서 거기이고 표현의 방식도 다채롭지 못하며, 쓰고자 하는 의지 또한 유리처럼 깨지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있지. 애정의 대상을 간절히 바라고, 자세히 관찰하고, 마음에 담다 보면 그 사람이 삶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오는 순간이 있어. 좋은 점은 배우고 싶고 부족한 면은 감싸 안고 싶으며 인격적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포용하게 되지.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사랑하지 않아도, 심지어 미워해도 오래 시간을 함께 보내면 적지 않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야. 마치 유년부터 아버지의 허물을 원망하고 나중에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으면서도 엇비슷한 모양으로 삶을 꾸며가는 어느 아들처럼 말이야.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홀로 살 수 없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잖아. 고양이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 녀석들 나름대로 집단과 서열을 형성하고 규칙을 만들어 공생하지. 아옹이와 다옹이를 같이 입양한 건 잘한 결정 같아. 소심한 겁쟁이 아옹이가 영리해서 집사를 잘 조련하는 다옹이를 닮아가는 것, 게으르고 눕기 좋아하는 아옹이가 사냥에 진심인 다옹이의 영향을 받아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지. 아옹이가 다옹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음......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분명히 있겠지. 아, 내가 눕기를 좋아하고 잠을 많이 자는 것도 아옹이를 닮아서 그런가 보다. 맞네. 그래서 그랬네.

우리는 이미 많은 부분 닮아 있었지. 성향도 비슷하고, 살아온 배경도 고만고만하고, 자아를 구성하는 여러 색채가 비슷하다 생각해. 한 가지 가장 미안한 것은 팔로우십이 강해 자기주장이 세지 않고 주위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네게 존경할 만한 모습으로 서있지 못했다는 부분이야. 인격적으로 더 성숙하고 의지와 신념이 강해 행동으로 많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면 네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을 텐데, 그게 내내 미안하다. 전에 썼던 편지글을 열어보니 다 비슷한 이야기, 고맙다는 인사와 사랑한다는 고백인데 신박하지 못하고 조악한 글이라 읽기가 부끄러웠어. 하지만 그 투박한 문장이 생김새는 볼품없이 거칠고 세련되지 못해도 내용만은 튼튼하길, 기한이 끝이 없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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