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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gbi Mar 11. 2022

5일차_채찍과 당근

채찍이 먹힐까, 당근이 먹힐까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써야 사람이 발전한다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채찍만 휘둘러도 안 되고, 당근만 먹여도 안 된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말이다. 사람이 너무 채찍만 휘두르면 의욕을 잃게 되고, 너무 당근만 먹이면 나태해진다. 그래서 채찍과 당근이 공존하고 시기적절하게 필요한 수단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채찍과 당근의 비율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극도의 자기 발전을 위해 당근보다 모진 채찍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자존감 상승을 위해 채찍보단 당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채찍과 당근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당근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정말 딱 맞다고 생각한다. 채찍질을 당하면 불필요하게 긴장하고 금방 풀이 죽는 타입이라 아예 손을 떼버리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당근을 먹으면 먹을수록 '아, 나 정말로 잘하는구나' 하면서 더 의욕적이게 되고 열심히 불태운다. 그래서 역효과를 불러오는 채찍보다는 당근을 많이 먹이려고 애쓴다. 비율로 따지자면 채찍 2 : 당근 8 정도.



사진출처 : 픽셀스



조금은 관대하면 안될까


지금은 채찍과 당근의 적당한 비율을 알지만, 예전에는 완전히 반대였다. 채찍이 9였고 당근이 1이었달까. 이상하게도 스스로에게 엄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아무래도 엄한 가정교육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칭찬에 꽤 인색하신 편이었다. 예를 들어, 전교 3등에 국어 100점 수학 82점을 받았다고 치자. 나름대로는 성적이 잘 나와서 스스로 만족스럽다 생각해도, 아버지께서는 칭찬보다는 '왜 수학이 82점밖에 안 나왔냐'고 지적하시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더 잘해보라는 의미로 말하셨다 했다. 그걸 후에 알게 됐지만 내겐 오히려 독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죽을 각오로 하루에 4시간만 자면서 공부해 전교 1등을 딱 한번 해본 적이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수학 점수를 98점까지 끌어올렸지만 모자란 2점 때문에 죽고 싶었다. 이렇게 고통스러울거면 차라리 자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후로 자퇴 위기는 넘겼지만 공부에 흥미를 잃고 적당한 성적만 유지하다가 학교를 졸업했다.


채찍이 나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나를 옥죄었고,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이 생기면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항상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고, 자괴감이 들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뭐든 열심히 했지만 정작 어느 것에도 만족하진 못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이만하면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우울해하는 나를 위로해줬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늘 조급했고, 불안했다.


사진출처 : 픽셀스



힘든 시기는 서서히 지나갔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쌓인 오해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서서히 사그라졌다. 아버지는 힘들어하는 나를 더이상 나무라지 않으셨고, 나는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게 됐다. 예전에 비해서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당근 쓰는 법은 잘 모르겠다. 남들한테 칭찬하고 응원하고 위로하는 것만큼만 스스로에게 해줘도 좋으련만, 어째 영 어색하다. 적극적으로 당근을 먹일 순 없지만, 좀 너그러워지기로 타협했다.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것을 경계하라고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각박한 세상이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도,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더라도, 나만큼은 뒤로 세 발자국 물러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손상된 자기효능감 회복하기


무수한 채찍으로 손상된 자기효능감은 많은 부작용을 안겨줬다. 크게 세 가지가 있다.


- 나에 대한 끊임 없는 의심

: 뭔가를 시작했으면 결과야 어찌됐든 일단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은데 계속 '이게 맞아?'라고 의심하는 증상이다. 그래서 도중에 포기하고 싶은 기분이 자꾸 든다. 이게 아닌 것 같아서. 내 판단이 틀린 것 같아서. 내 선택이 실패할 것 같아서. 의심과 두려움은 항상 공존하는 것 같다. 


- 작은 실수에도 온갖 호들갑 떨기

: 사람이 살다보면 크고 작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좀만 실수하면 인생 망한 사람처럼 호들갑 떨고 혼자 비극 대본 하나 쭉 써서 비련의 주인공에 과몰입 하고선 멋대로 막을 내려버린다. 실수를 했으면 수습할 생각을 해야 되는데 일단 일이 틀어지면 너무 당황해서 걱정밖에 들지 않는다.


- 지독한 자기혐오

: 의심과 호들갑이 절정에 이르면 끝에는 꼭 자기혐오가 따른다. 별의별 자책거리를 들고와서 자괴감에 시달리다가 '난 쓰레기야' '벌레만도 못한 얼간이'라며 스스로를 폄하한다. 심한 날엔 아무도 만날 수가 없고 거울조차 들여다보기 싫어진다. 



사진출처 : 픽셀스



손상된 자기효능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당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솔직히 거울 보고 '아이 예쁘다' 라고 말하거나 '할 수 있다!'고 외치기에는 좀 부끄럽달까. 칭찬일기나 감사일기 역시도 해봤지만 썩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 것 말고 성능 확실한 당근이 없을까 요즘 고민중이다. 몇 가지 생각난 아이디어는 이렇다.



- 자기 보상 강화

: 잘한 일이 있거나 목표한 것을 성취했을 때 자기보상을 주는 방법이다. 역시 격려엔 금융치료만한 게 없는 것 같다. 평소에 갖고 싶은 걸 장바구니에 하나씩 넣어뒀다가 이벤트가 발생하면 모아놓은 돈으로 자기보상을 해주는 식이다. 솔직히 나는 갖고 싶은 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주로 분위기 좋고 커피 맛 좋은 카페를 가는 것으로 보상을 해주고 있다.


- 결과 전시

: 한 일이 있으면 그 결과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잘한 것만 드러내지 말고 잘했든 못했든 일단 내놓고 보는 것이다. 내가 해본 결과 전시로는 '독립출판 해보기'였다. 이제껏 썼던 시와 소설을 추려서 혼자 작품집을 만들었다. 작가의 꿈을 막연히 품고만 있다가 실제로 출판까지 해보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물론 신춘문예에 등단한 정식 작가도 아니고 책의 판매부수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 전시를 통해 마음만큼은 이미 출간작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혼자서만 보던 내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고보니 걱정했던 것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까지 내게 줄 당근을 많이 마련하진 못했다. 좀 더 이것저것 시도해봐야 할 것 같다. 언젠가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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