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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gbi Apr 05. 2022

22일차_핸드메이드 사원증 만들기

회사놀이에 진심인 신입사원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일정한 수입이 있다는 것 말고도 부러운 부분이 있다. 그 중 사소하지만 가장 부러운 것은 바로 목에 거는 '사원증'이다. 예전에 나도 회사에 다닐 때 사원증이 있었다. 출근할 때 목에 걸면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고, 퇴근할 때 목에서 빼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소속감을 줬는데, 별 거 아닌 것 같아보였던 사원증에 생각보다 힘이 깃들어 있다는 걸 느꼈다.


백수일 때 가장 서러운 것 중 하나가 소속감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소속감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회사가 가지고 있는 소속감 구현의 물리적 시스템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해봤다. 한 건물에 같은 사무실 안에서 정해진 내 자리에 앉아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백수는 그 모든 것을 구현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무엇보다 한 공간에 동료들이 함께하지 못한다는 건 소속감을 저하시키는 요소일 것이다.


사진출처 : 픽셀스


니트컴퍼니는 따로 출퇴근을 하고 업무를 보는 공간인 사무실이 없지만, 함께하는 100명의 동료들이 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맡은 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좀 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문득 '사원증'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사실 출퇴근 할 때 찍을 용도도 아니고 서로 직급과 얼굴을 확인할 일은 잘 없지만, 그래도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목에 걸었다 빼는 사원증이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했다. 니트컴퍼니에서 입사할 때 명함 신청을 받는 기간이 있었는데, 주간회의 때 건의를 해보려고 하다가 주저했다. 나만 좋다고 생각하는 거면 어쩌지? 그래서 직접 한 번 만들어보고 출퇴근 할 때마다 사용해보기로 했다.




사원증 만드는 과정


포토샵 자격증도 있고 일러스트 프로그램도 다룰 줄 알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집에 프린터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트에 손으로 일일이 그려가면서 작업을 했다.


만년필로 직접 그린 사원증 제작도


먼저 규격을 잡아줬다. 가장 일반적인 사원증 크기를 찾아보았다. 가로 5.8센티미터, 세로 9센티미터가 대부분이었다. 가로형으로 만들지 세로형으로 만들지 고민하다가, 가로형은 불편했던 경험이 있어서 세로형으로 제작했다.


시안은 래퍼런스를 참고해서 4개까지 그렸다. 최종은 시안 3번.


그 다음에는 디자인 시안이다. 사원증 디자인 래퍼런스는 시중에 나와있는 것을 몇 가지 찾아서 참고했다. 사원증에는 니트컴퍼니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심볼을 넣고 싶어서 사이트에 들어가 니트컴퍼니의 아이콘을 찾아 따라 그렸다. (피곤한 유령 모양의 아이콘인데 생각보다 귀엽다) 깔끔하지만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그려보다가, 최종적으로는 시안 3번이 채택되었다.


배치를 위한 이모저모. 지웠다 그렸다 한 흔적이 남아있다.


다음으로는 세부디자인이다. 종이에 실제 규격에 맞게 칸을 그려놓고, 아이콘과 텍스트를 배치했다. 깔끔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아이콘과 텍스트를 제외하고 따로 채색은 하지 않았다. 증명사진은 찍지 않은 지가 오래 되어서 학생 때 찍었던 남은 증명사진을 사용했다. 뒷면은 더 깔끔하게 사훈만 간단히 넣기로 했다.


재료는 다음과 같다. 집에 남아도는 하드보드지, A4용지 1장, 증명사진, 딱풀, 유리테이프, 네임펜, 사원증 목줄. 규격에 맞게 자르고 그리고 붙이고를 반복하다보니 그런대로 모양이 완성되었다!





사원증을 하고 출퇴근을 해보았다


사원증은 3월 23일에 만들었다. 제작 후부터 계속 착용하고 있는데, 사원증이 없었을 때와 사원증을 했을 때의 차이점을 느낀대로 적어보겠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사원증. 손제작이라 어설픈 부분도 있지만 만족스럽다.



1) 출퇴근한 기분이 명확해진다

: 물론 밴드에 출퇴근을 찍고 업무인증을 남기긴 하지만 혼자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일을 하다보면 쉽게 해이해지곤 했다. 출근해놓고 그냥 잠을 잔 적도 있고, 잠시 딴 일을 하다보면 업무중인것도 잊을 때가 있었다. 명료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차였는데, 출근루틴을 만들고 출근 때 사원증을 목에 거니 확실히 '일을 시작했다'는 표시가 났다. 그리고 퇴근시간에 홀가분하게 사원증을 내려놓으면서 좀 더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내게 주어진 시간동안 업무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



2) 놀이지만 진심으로 임하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 니트컴퍼니의 시작은 '회사놀이'다. 백수지만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처럼 생활하면서 일상에 활력을 되찾고 벼랑 끝에 몰린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놀이라는 말은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냥 놀이니까, 라고 생각해버리면 마음이 가벼우니까. 그렇지만 결코 책임감 없이 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다만 니트라는 특수한 상태에서 오는 압박감을 덜고 뭐라도 하나씩 하면서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가져온 단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놀이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다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 내 삶에 보다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절대로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고, 진심으로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든 사원증은 그런 진심의 증표다.



3) 태도가 달라졌다

: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눈엔 평범한 아파트 주민이지만 그도 직장에 출근해서 가운을 입으면 완벽하게 병원 의사가 된다. 아직 철부지 같아보이는 내 친구도 직장에 출근해서 복장을 달리하면 강인하고 친절한 경찰이 되고, 공연예술인이 되고, 간호사가 된다. 

아직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상태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주어진 역할과 상황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역할과 상황을 부여하는 물건으로 사원증이 생겼다. 사원증을 걸면 아침에 부시시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도 부지런하게 원고를 쓰는 작가가 된다. 스스로 그렇게 믿는 태도가 확실히 생겼다.




이런 효과를 직접 체감해보니 다른 사원들에게도 사원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간회의 때 아이디어를 내고 동료들의 의견을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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