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봤던 컨텐츠가 바로 '출근 브이로그'였다. 다들 감성적인 아침을 열고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내려마신 다음 부지런하게 출근준비를 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막연하게 나도 생각했던 것 같다. '아, 나도 회사원이 되면 저렇게 멋진 출근 루틴을 가질 수 있겠구나!'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막상 취업해보니 나의 아침 루틴이라는 것은 지극히 생존에 맞춰져 있었다. 회사까지 편도로 1시간 반이 걸려서 무조건 새벽 5시 반 기상이었다. 기상하자마자 화장실로 뛰어들어가서 씻고, 머리를 말리면서 화장을 하고, 커피는 무슨 물 한모금 마실 새도 없이 옷을 갈아입고 버스 시간에 맞춰 정류장으로 뛰어야 한다. 그나마 버스에 탈 자리가 있으면 땡큐, 없으면 가득 차버린 마을버스를 보내고 다음 버스를 타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부랴부랴 버스를 갈아타고 도시로 나가면 출근전쟁을 벌이는 동지들(?)의 얼굴을 마주한다.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숨을 푹 쉬고 새벽 공기를 뚫으며 출근을 마치면 7시 40분, 업무시작은 8시부터였다. 그 전에 정수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믹스커피를 하나 타서 마신다. 졸린 눈으로 회사 메신저에 접속하면 하루의 시작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브이로그는 커녕 아침에 눈이라도 제대로 뜨면 다행이었다. 루틴도 루틴이라기보다는 그냥 어떻게든 제시간에 출근하기 위한 기계적인 몸부림이었을 뿐,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퇴사를 하고 장기간 무직 상태로 지내면서 자기만의 루틴이 몸에 습관처럼 스며있었던 그 때가 부럽기는 했다. (치열하던 출근시간이 절대로 그리운 건 아니다. 8시 출근은 지금도 사절이다!) 어찌보면 하루를 열고 몸을 깨우기에 좋은 건 루틴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니트컴퍼니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출퇴근과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나는 나만의 출근 퇴근 루틴을 만들었다. 7시 50분에 기상해서 간단하게 씻고, 물 한 모금을 마신다. 그리고 목과 어깨와 허리를 간단하게 스트레칭 하면서 졸음을 깬다. 고양이 화장실을 한 번 체크한 다음, 배가 고프면 끼니를 때운다. 느릿느릿 믹스커피를 한 잔 타서 책상 앞에 앉으면 대략 8시 45분쯤 되는데, 그 때 출근 체크를 찍는다.
9시부터의 본격적인 업무 진행에 앞서 출근 장비들을 착용한다. 먼저, 사원증이다. 회사를 다녔을 때를 생각해보면 목에 사원증을 걸었을 때 비로소 '아...돈벌어야지'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몸과 마음에 출근 신호를 알리기 위해 자체적으로 사원증을 제작했다. (DIY 사원증 제작기는 다음화에 계속) 사원증을 목에 걸면, 다음으로는 안경을 쓴다. 나는 라식을 했지만 안구 보호를 위해 컴퓨터를 쓸 때에는 블루라이트 차단 기능이 있는 안경을 쓴다. 그 다음에는 손목에 시계를 찬다. 시계는 화면 하단이나 휴대폰으로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컴퓨터를 벗어나 있거나 휴대폰이 당장 손에 없을 때는 시계만한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업무 체크리스트를 쓴다. 원래는 퇴근 후 저녁에 미리 썼지만, 그러다보니 그때그때 생기는 일을 처리하기가 어려워서 출근 직전에 쓰도록 했다. 주 업무 1개와 부수적인 업무 여러개를 정리해서 쓰고 나면 본격적으로 일을 할 준비가 끝난다.
루틴이라고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매일 계속 할 수 있는 간단하지만 확실한 행동들을 정해놓고 꾸준히 하는 것이 전부다. 비록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루틴의 힘은 상당히 크다. 처음에는 습관을 들이기 힘들지만 나중에는 굳이 힘 들이지 않고도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건 인생을 바꿀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이 비록 당장 성과를 보여주는 행위가 아닐지라도, 단 몇 시간이라도 내 의지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인생의 주체성을 가진다는 것과도 같다. 그런 행위들이 모이고 모이면 비로소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온전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다. 예전의 나는 성취감을 크고 먼 목표라고 생각했었다.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다거나, 큰 돈을 번다거나, 작가로 등단 정도는 해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목표가 너무 크고 원대하다보니 당장 놓여있는 하루하루를 잘 꾸려나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사실 그런 명예나 영광보다 더 중요한 게 당장 오늘부터 똑바로 사는 것인줄 모르고.
물론 큰 성취감이 각인효과는 크지만 , 그것은 인생의 한 순간일 뿐이다. 결국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사소하지만 꾸준한 성취감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몸을 일으켜 이부자리부터 단정하게 정리해보면 안다. 그게 뭐 별거냐, 싶겠지만 살다보면 그것조차도 벅찬 순간이 찾아온다. 내 몸이 사소한 성취감을 기억하면, 지금은 힘들어도 반드시 다시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