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이라는 말에서 개인적으로는 항상 긍정의 느낌을 받는다. 한 명 한 명의 개인을 모두 존중하고, 저마다의 색깔을 펼칠 수 있는 분위기이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건강한 소통으로 함께 결정해 가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민주'라는 것은 과거 우리가 피를 흘리며, 희생을 통해 얻어낸 것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풍겨오는 고귀함이 있다.
민주적으로 생활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함에 있어서, 자녀를 지도함에 있어서는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해야 할 때와 교사나 부모가 리더십을 가지고 이끌어 가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구분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아 적당히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초임 시절! 민주적인 교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 당시 존경하던 교감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적당히 민주적이어야 해. 담임이 주관을 가지고 지도해야 해." 교감 선생님께서는 아이들과의 세대 차이도 많이 나고, 소통의 어려움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민주적이면 민주적일수록 좋은 거지.
그런데, 교직 생활을 이어가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물론, 지금도 민주적인 교사가 되기를 바라지만 이전보다는 민주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부분에 주관이 생겼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는 경우 또한 많이 있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게 된 배경에는 투입하는 노력과 시간, 그리고 실패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다. 민주적인 방법은 결과 도출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인내, 시간이 필요하다. 모두가 긍정적인 합의를 도출할 경우 공동체의 끈끈함은 더해진다. 하지만, 민주적인 방법은 실패를 할 가능성 또한 크다. 예전에는 그런 실패도 아주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실패가 가끔은 몇몇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기는 경우가 있다. 한 반이 20명이라고 하면, 19명이 실패로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1명이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얻게 된다면 그 1명에게는 실패한 교육이 되고 만다.
어른조차도 민주적인 시스템 안에서 무수히 많은 실수를 하며 시행착오를 겪는데 어린이들의 실패의 가능성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 실패가 한 명에게 큰 상처를 준다면 실패할 경우 피해가 적은 방향으로 안전장치를 둔 제한된, 적당한 민주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예를 들어, 반에서 자리를 바꾸는 문제를 민주적인 방식으로 '친한 친구와 앉기'로 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아름다운 그림은 아이들이 서로 적절하게, 소외됨 없이, 집중도가 높은 방향으로 자리 배정을 하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소외되는 아이들이 생긴다. 소외되는 아이들은 자리를 정하는 그 과정에서 말도 못 하고, 위축되고, 친구가 없어서 슬픔과 자괴감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이렇게 우려되는 친구에게 슬며시 물어보기도 했다.
"진영아, 선생님이 친구들과 앉는 자리를 친한 친구끼리 앉는 방법으로 하면 어떨까? 너 생각은 어때?"
"저는 좀 불편해요."
"그래, 그냥 한번 물어봤어. 그러면 지금처럼 선생님이 이렇게 정해주는 게 좋아?"
"네."
적어도 담임이 자리를 정해주면 여러 자리에 골고루 앉고, 여러 친구와 골고루 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진다. 민주적인 방법은 아니어도 모두가 적당히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교직 경험이 늘어날수록 다수의 큰 목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이 생겼다.
가정에서도 적당히 민주적일 필요가 있다. 가끔 모든 판단의 기준을 '자녀'의 생각에 두는 부모님들을 볼 때가 있다. 교사 관점에서 볼 때는 이 문제는 부모님이 중심을 가지고,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부모님께서는 "우리 진영이가 이게 좋다고 해서요."라고 자녀의 생각을 최우선으로 판단을 한다. 이런 모습이 반복되면 습관으로 굳어져 부모님이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게 된다.
예전 존경하는 교감 선생님께서도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으셨지만 "사랑하는 아이들을 대할 때 어른의 지혜와 깊은 생각으로 보완한 적당히 민주적인 방법이 좋을 것 같네."라고 덤덤히 말씀하신 것 같다.
"교감 선생님! 그땐 좀 이해 못 했는데, 이제 좀 이해했나 봅니다. 아니면, 저 또한 나이가 들어가는 걸까요?^^"
그리고, 진영이는 학교에서 실 사례와는 전혀 관계없는, 제 소중한 친구입니다. 갑자기 떠올라 사용했네요. 실제 사건의 이름이 아니니 오해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