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캠핑을 시작한 이유
여행이 좋아 여행 관련 어플 회사에 들어갔지만 나의 업무는 여행과는 다소 멀었다.
매일 남들의 여행 사진을 들여다보며 부러운 마음을 억누르고 광고 소재를 만들고, 여행을 가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기 위한 내 속마음을 드러내는 카피를 작성할 뿐이었다.
대략 이 업무를 2년 여정도 진행하다 보니, 참신한 도전보단 안전한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효율이 좋았던 소재와 결이 비슷한 소재들만 만들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는 소재 제작 공장장처럼 창의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광고쟁이가 되어 있었다.
20년,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히게 되며 국내 여행의 붐이 시작되었고
(내 성장 면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업무가 과대평가될 정도로 대충 찍어내듯 만들어낸 소재들의 효율은 말도 안 되는 수치로 좋게 나왔다.
대한민국 직장 불변의 법칙인 '잘하는 이에게 일 몰리기'가 시작되었고,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은 쌓여만 갔다.
정신없는 2020년을 보내고 맞이한 연말. 쌓여있는 일을 처내듯이 처리하던 중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서러웠다. (심지어 늦은 시간 야근을 하던 중도 아니었다!) 사무실 책상에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화장실로 도망간 뒤 나는 무작정 강원도의 한 숙소를 예약했다.
급작스러운 여행에 연차를 못 쓰는 건 당연지사였기에 퇴근 후 출발로 여행 일정을 잡았다.
평소 즉흥과는 거리가 먼 아내를 둔 내 남편은 이런 나의 제안에 안쓰러운 마음과 동시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주 금요일, 퇴근과 함께 우리는 강원도에 있는 한 호텔로 떠났다
퇴근 후 여행이다 보니 아무리 좋은 호텔도 모텔마냥 잠만 자고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 호텔에서 기억나는 거라곤 깜깜한 나무 뷰뿐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바로 집으로 올라가지 말고 바다라도 구경하자고 했다.
차를 중고로 구매한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던 지라 차의 기능이라곤 하나도 몰랐다. 트렁크에 누워서 바다를 본다니!
차를 끌고 이리저리 숙소 근처를 돌아다니 던 중 우리는 많은 차들이 트렁크를 개방한 채 주차되어 있는 한 주차장을 발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차박의 성지로 불릴 만큼 낚시꾼들과 차박 캠퍼들에게 유명한 곳이었다. (양양 물치 해수욕장 근처 회센터 주차장)
우리는 회센터 앞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두 잔을 사 온 뒤 트렁크 안에 있던 매트 하나만 편 채 한 참을 멍 때렸다. 파도가 쓸고 지나간 자리에 서로 부딪히는 몽돌들, 멀리 보이는 오리들의 장난 짓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지난밤 좋은 숙소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과 따듯한 이부자리와 대조되는 딱딱한 트렁크 바닥, 트렁크 프레임에 맞춰 보이는 작은 바다 그리고 찬 겨울바다 공기.
그런데도 나는 이곳에서 더 큰 휴식을 얻었다.
나는 그날 돌아오는 차에서부터 차박 캠핑을 검색했다. 다양한 유튜버들의 리뷰들을 새벽 늦게까지 찾아봤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캠핑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