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송원 Feb 23. 2022

고작 하룬데 뭐가 이렇게 많이 필요해?

가성비 찾다 갓성비 찾은 여행

캠핑을 시작하려고 보니 일반적인 여행과는 다르게 필요한 게 정말 많았다.

쉽게 얘기해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의식주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준비해 가야 했다.

숙소를 빌려 가는 여행의 경우 가서 먹고, 자는 것에 필요한 모든 도구는 준비되어 있어 식재료와 세면도구, 갈아입을 옷 정도만 필요했지만 캠핑은 잘 공간, 침구류,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자잘한 것들까지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비용도!


나는 워낙 냄비 같은 아이인지라 이 캠핑에 얼마나 내가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열정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고작 직장인 6년 차의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많은 돈을 얼마 못 갈지도 모르는 취미생활에 쏟아부을 자신이 없었기에 나는 가성비 높은 캠핑 장비를 검색했다.


그리고 선택한 우리의 첫 텐트는 차박용 텐트인 약 20만 원의 캠프벨리 카쉘터였다.

우리는 가지고 있던 캠핑 장비라 할만한 것들을 챙긴 뒤 텐트 피칭도 해볼 겸 차크닉(차박+피크닉)을 나갔다.

텐트를 단 한 번도 쳐본 적 없던 우리 부부는 설명서와 유튜버들의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헤매기 바빴고,

팩을 박아야 한다는 상식도 없던 지라 당연히 망치도 가져가지 않아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로 냅다 땅을 내리쳐가며 텐트를 쳤다


우리 옆에 있던 아저씨는 그런 우리가 답답했던지 "거~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래! 그걸 잡아당겨!" 하며 입으로 열심히 도와주셨고,

다른 편 옆에 계신 부부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망치를 빌려주시며 팩을 박는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한국인의 정(?)으로 어렵사리 텐트는 쳤지만 부족한 실력 탓에 상품 상세페이지와 달리 쭈글쭈글한 상태로 전혀 예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진짜 집을 지은 것처럼 너무 행복했다. 장비라고는 텐트, 스타벅스에서 받은 의자, 집에서 쓰던 이불 그리고 한 겨울 공기에 식어가는 치킨뿐이었지만 기분만큼은 최고였다.

사실 캠핑이 하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가볍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차 한 대로 가볍게 떠나고 싶을 때 시간 제약 없이, 잠 잘 곳 걱정 없이 언제든!

그런 의미로 그날의 차크닉은 완벽한 시작이었다.


미디어 매체에서 잠시 잠깐 벗어나 자연을 바라보며 둘만의 공간에서 나누는 소중한 대화.

그리고 다가오는 봄에 자리를 비켜줄 듯 말 듯 앙탈 부리는 겨울의 바람

차갑게 식어도 맛있는 치킨에 우리는 행복함을 무한히 느꼈고, 차근차근 소소하게 우리의 색깔로 이 텐트 안도 꾸며보자 했다


결혼 전 남편이 쓰던 이불 하나 깔아놓고 나름의 분위기를 내보겠다며 알전구를 주렁주렁 매달은 차 안은 나름 로맨틱(?) 했고,

그날 한 거라곤 바깥 풍경 보며 치킨을 먹은 것, 그리고 영화 한 편 보며 차에 누워 과자를 까먹은 일 외엔 없었다. 그것도 매우 익숙한 집 근처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온듯한 기분을 충분히 느꼈다.

그날로 깨달은 여행의 정의는 어딘가로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익숙한 공간도 이색적이게 느낄 수 있는 환경'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동네 공원이었지만 이 텐트 하나로 캠핑을 나온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고,

화기를 사용해 요리를 해 먹는 캠핑이 아닐지라도 충분히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 (旅行)
[명사]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인스타그램에 캠핑 해시태그를 검색했을 때 너무나도 화려한 랜턴들, 그리고 100~ 20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고가의 텐트들로 기가 죽었던 나에게 용기를 불러 준 고마운 캠크닉이었다.


이렇게 시작해도 괜찮구나!



작가의 이전글 쉼을 위한 도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