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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원 Feb 25. 2022

원초적인 본능에서 오는 즐거움

캠핑에서 느낄 수 있는 사소한 즐거움

최근 나혼자산다 프로그램에서 박나래가 다녀온 제주도 백패킹이 큰 화제가 되었다.

사실 프로그램 속 캠핑은 즐거움보단 고난에 가까운 캠핑이었다. 트래킹 중 화장실이 가고 싶어 절규를 한다던지, 너무 추워 오들오들 떨며 제주도 똥바람과 맞서 싸우는 장면들은 '저렇게 힘든데 왜 캠핑을 가지?'라는 의문점을 갖게 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캠핑을 다녀보지 않은 샤이니 키가 동일한 질문을 했고, 이에 캠핑을 좋아하는 이장우는 저렇게 힘든 와중에 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간다고 답했다.


나혼자산다 방송 중


그럼, 나는 왜 캠핑을 다닐까?


이 질문은 캠핑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함께 수없이 많이 논의했던 질문이었다.

평소 잠자리가 예민해 카카오톡 알림음에도 잠이 깨버리고, 사실 회사 내의 팀장님이 캠핑을 권유했을 때에도 그다지 시큰둥했던 나였는데, 어느새 지금은 작은 18평의 신혼집 중 방 하나 전체가 캠핑용품으로 가득 차버릴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캠핑 유튜브, 브런치 글도 시작했으니 말 다했겠지)

오늘은 내가 지난 2년여간 캠핑을 즐기며 느낀 사사로운 즐거움들 속에서 캠핑을 다니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1. 가벼운 마음으로 무겁게 떠나고 있습니다

돌아다니는 작은 나의 집과 함께 한 차박 캠핑

사실 캠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리 집 차의 트렁크가 폴딩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일반적인 여행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몇몇 가지의 장비만 있다면 일반적인 여행 대비 비용도 덜 들거라 생각했었고...! (물론 이 부분은 점차 아니란 걸 깨달았지만) 


일반적인 여행 대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실 캠핑에 가면 하는 일은 원초적인 본능을 채우기 위한 일들 뿐이다. 


먹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따뜻하기 위해 불을 피우고,

잠을 자기 위해 집을 짓는다.


이 본능을 채우기 위한 일들만 하더라도 하루가 짧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무언가를 해야 하고, 특정 관광지를 꼭 둘러봐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만인 캠핑.

내가 보고 싶은 풍경이 있는 곳에 창을 낼 수 있도록 간이집을 만들고,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쳐다보며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계곡 소리 혹은 풀벌레 소리 ASMR을 들으며 잠을 청하고,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와 함께 기상하는 일.

별 다른 목표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를 보내기 위해 캠핑을 떠난다.


2. 대화하고 싶어 떠나고 있습니다


캠핑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는 점은 솔직해진다는 점이다. 배우자와 함께 가던, 친구와 함께 가던 그동안 못해왔던 이야기를 쏟아내게 된다. 


지난 11월, 캠핑을 꼭 해보고 싶다던 오래된 친구와 함께 캠핑을 갔었다. 

평소에도 솔직하고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잘해주는 친구이기 때문에 나는 그 친구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캠핑장에 도착해서는 여느 때 놀던 것과 같이 주변 캠핑장 풍경을 산책하며 구경하고,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 캠핑에 오면 꼭 불멍이 하고 싶었어!"

친구의 소원대로 우리는 작은 화로대에 장작과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 넣고 불을 지폈다.

잘 마른 장작이 타오르는 소리,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갈수록 우리 주변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캠핑의 밤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캠핑을 즐기는 이들이 그렇듯 나는 이 시간이 가장 좋다.

저물어가는 저녁 불을 보며 한 없이 멍 때릴 수 있는 시간. 

타들어가는 장작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많은 생각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차분해진다.

이런 분위기 덕분인지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을밤을 즐겼고, 

나도 생각지 못하게 개인적인 고민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송원아, 나는 자기감정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는 게 좋은 것 같아. 얘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던 나를 좀 알아가는 것 같아"


매일 메신저로 안부를 전하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나는 사이이지만 나누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었고, 친구의 말처럼 우리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감정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흔히 요즘 말하는 J(MBTI의 계획형 인간)인지라, 여행을 가게 되면 일정을 세분화해서 짜고

저녁에는 다음날의 일정을 짜거나 혹은 그날의 여행을 정리하기 바빴다.

캠핑은 그런 일련의 과정이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가는 여행'이기 때문에 그런지

함께 가는 이와 함께 대화를 할 시간이 많아지고, 

혹 혼자 가게 되거든 나와의 대화하는 시간을 곰곰이 가져볼 수 있었다.



캠핑을 나가면 불편한 점들이 꽤나 있다.

집이나 호텔, 펜션에서는 10 발자국 내외로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있지만 캠핑장은 그렇지 않다.

음식을 먹기 위해 야외에서 조리를 해야 하고, 먹은 뒤에 치우는 것도 개수대라는 공용의 공간에서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캠핑 용품들 중에 잠자리 개선을 위한 다양한 제품들이 많이 나왔지만 아무리 그래도 침대만큼의 편안함을 주지는 못한다. 겨울엔 이불속에선 따듯함을 느끼지만 콧잔등이 시린 밤공기를 느낄 수 있고, 여름엔 에어컨의 소중함을 물씬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캠핑을 가느냐고 물어본다면,

저 모든 불편함을 이길 수 있는 마음의 편안함이 있어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힐링! 거 별거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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