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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Oct 01. 2019

라스 폰 트리에 골든 하트 3부작 리뷰

N부작,사부작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먼저 감상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 우선 이 3부작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어떤 무언가에 강력하게 사로잡혀 있는 상태로 묘사 됩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베스는 남편 얀에게, <백치들>에서 카렌은 백치 행위 혹은 죽은 아들에, <어둠 속의 댄서>에서 셀마는 아들(정확히는 아들의 치료)에게 사로잡혀 있죠. 이런 것들은 모두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상처와 연관되어 있죠. 그래서 이 3부작을 한 마디로 거칠게 말하자면 ‘사로잡힌 자들의 숭고한 희생을 다룬 이야기’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영화는 어느 순간 이 인물들에게 시련을 줍니다. 베스의 남편 얀은 유정에서 사고를 당해 전신 마비를 당하고, 카렌이 속한 백치 그룹은 무너질 위기에 처하고, 셀마는 아들을 수술 시키지 못 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물들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해야만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입니다. 그리고 인물들은 모두 자신을 희생하는 쪽을 선택하며 결국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게 되죠.



2. 골든 하트 3부작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우리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3부작의 주인공들은 어리석다고 생각될 정도로 너무나도 순수하고 순진한 동시에 숭고한 인물들입니다(그리고 모두 여성이죠). 이러한 순수한 여성이 어떠한 시련을 겪게 되면서 자신이 속한 세계가 악이라고 규정한 행동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게 되죠. 그리고 인물들은 그 행동을 하게 되면서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끝내 지키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는 ‘그 인물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행위를 바라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인물들이 저지른 행위를 진정 악행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 묻습니다. 물론 이 인물들의 행동을 무조건 선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셀마가 저지른 살인은 엄연히 범죄이고 베스가 매춘을 하는 것도 무조건 좋다고 볼 수 없으며 카렌과 백치 그룹의 백치 행위도 주변에 피해를 준다는 측면에서는 거부감을 들게 만듭니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그런 표면적인 행위만을 보지 않고 그 인물이 왜 그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묘사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것은 윤리학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난제입니다. 어떤 행위를 평가할 때 그 행위의 동기를 중심에 둘 것인 것 혹은 결과를 중심에 둘 것인가라는 질문은 현재도 윤리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죠. 골든 하트 3부작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전자를 지지하는 듯 합니다. 결과주의가 만연하는 현대 사회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그 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인물을 숭고하게 그려냅니다. 동시에 그 인물들을 악인이라고 규정하는 사회와 세계에 대한 비판도 담아냅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렇게 희생된 인물들에 대한 경배를 받칩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는 종소리로, <어둠 속의 댄서>에서는 자막으로 바치죠. 



3. 골든 하트 3부작에서 중요한 또 다른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모자 관계입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베스의 남편 얀은 사실상 베스의 아들처럼 묘사됩니다. <백치들>에서 카렌은 아들을 잃은 상실감으로 백치 행위에 몰두하게 되고, <어둠 속의 댄서>에서 셀마도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죠. 골든 하트 3부작뿐만 아니라 다른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에서도 모자 관계가 중요하게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우울 3부작이 있겠죠. 이 영화들에서 모자 관계는 사실상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는 베스라는 성모가 예수(얀)를 부활시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백치들>은 예수를 잃은 성모가 자신의 고통을 백치 행위로 승화시켜 세상을 향해 표출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고, <어둠 속의 댄서> 역시 예수를 지키기 위한 성모의 희생을 다룬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라스 폰 트리에의 많은 영화에서는 여성을 숭고하고 남성이 이뤄놓은 체제와 틀에 대항하는 인물로 그려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 3부작은 그러한 특징을 상당히 극단적으로 표현하면서 여성을 위악적이고 광적이면서 숭고한 존재로 묘사하고 남성을 위선적이고 이성적이면서 여성에 대해 무지한 존재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는 것은 라스 폰 트리에 본인이 앓고 있는 정신적인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여성은 카오스를, 남성은 코스모스를 상징합니다. 이건 골든 하트 3부작에서도 유사합니다. 다만 골든 하트 3부작에서는 여성을 마녀보다는 성모로 묘사하면서 순수하고 나약한 존재로 표현하죠. 그리고 주인공들은 남성들의 세계에 대항 한다기 보다는 복종하는 성격이 더 강합니다(베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고 셀마도 성실한 공장 노동자입니다. 그리고 공장의 소음을 통해 뮤지컬을 상상하죠). 말하자면 우울 3부작이 남성이 규정한 질서정연한 세계(코스모스)를 깨고자 하는 마녀(카오스)의 이야기라면 골든 하트 3부작은 남성이 정해놓은 세계 속에서 나약하게 희생되는 성모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종합해 보자면 골든 하트 3부작은 예수를 위해 희생하는 성모의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순수한 믿음만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에 대해 존경과 경의를 바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 3부작의 이름이 ‘골든 하트’인 것도 황금처럼 고귀한 심장을 가진 이들에 대한 영화이기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인물들은 머리가 아니라 심장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니까요. 저에게 골든 하트 3부작은 상당히 처연하고 쓸쓸한 동시에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3부작은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우울 3부작과 유사하면서 차이점도 있는 작품들이니 두 3부작을 비교해서 보시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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