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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Oct 01. 2019

스티브 맥퀸 육체 2부작 리뷰

N부작,사부작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먼저 감상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육체 2부작이라는 타이틀은 제가 임의로 정한 2부작입니다. 



1. 헝거와 셰임은 유사한 주제를 다루면서 그 방향성은 정반대인 2부작입니다. 두 영화는 모두 육체와 정신의 관계에 대해서 깊게 파고듭니다. 영화 자체도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보다는 한발짝 물러서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그것이 오히려 인물의 숭고함이나 처연함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헝거(Hunger)와 셰임(Shame)은 모두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헝거는 굶주림을, 셰임은 수치심을 의미하죠. 이때 굶주림은 육체의 상태를 강조하고, 수치심은 정신의 상태를 강조합니다. 그것은 이 두 영화의 방향성 차이를 보여줍니다. 두 영화에서는 모두 육체를 강조하는 느낌이 있지만 헝거에서는 육체의 패배를 보여주고 셰임에서는 정신의 패배를 보여줍니다. 헝거에서 정신은 육체를 지배하고자 합니다. 주인공 보비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육체적인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의 육체를 극단적으로 몰아세우죠. 그리고 자신들의 신념을 방해하는 교도관들의 육체를 죽이면서 정신적인 승리를 얻어내고자 합니다. 결말까지 보고 나면 주인공은 끝내 정신적인 승리를 얻은 듯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육체 없는 정신의 승리의, 그리고 정신의 승리를 위한 육체의 희생의 공허함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셰임은 정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육체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셰임의 주인공인 브랜든은 성적인 중독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동시에 인간적인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렇기에 이 인물은 관계를 배제해야만 육체적인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인물입니다(그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은 두 여성은 모두 그와 섹스를 하지 못합니다). 관계라는 정신적인 것을 배제해야만 육체적 쾌락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육체가 정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는 님포매니악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육체적인 승리를 얻어낸 그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정신적인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한 정신적 패배를 맞이한 인물의 공허한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셰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이 두 영화는 모두 정신과 육체 중 희생된 측면을 바라보면서 어느 한쪽을 위해서 다른 한쪽을 희생해야만 하는 인물의 공허함을 바라보는 영화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두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테이블에서의 대화 장면을 뽑고 싶습니다. 헝거에서는 많은 분들이 인상적으로 보신 보비와 도미닉 신부의 대화 장면이 있고 셰임에서는 브랜든과 마리온의 식당 대화 장면이 있습니다. 두 장면 모두 롱테이크로 찍혀 있죠. 두 장면에서 대화의 공통점은 두 인물간의 간극입니다. 아무리 가까워지려고 해도 가까워지지 않은 인물간의 관계가 중요하죠. 헝거에서 보비는 단식을 통해 자신의 신념(정신)을 실현시키고자 하고 도미닉 신부는 생명(육체)의 소중함을 말하면서 이를 막으려고 합니다. 기나긴 대화를 통해서도 두 인물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게 되고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은 채 끝나게 됩니다. 셰임에서 브랜든과 마리온은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둘 사이는 계속 서먹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게다가 중간중간 웨이터가 끼어들면서 대화를 방해하기도 하고 카메라 앞으로 사람이 지나가서 관객들을 방해하기도 하죠. 이를 통해 브랜든과 마리온의 불통과 가까워질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죠. 두 인물은 나중에 섹스를 시도하지만 결국 섹스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브랜든에게 섹스는 정신적인 관계를 배재하고서야 할 수 있는 육체적인 행위이니까요. 이 두 장면은 결국 화해할 수 없고 공존할 수 없는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3. 두 영화에서 나타나는 명확한 대비도 흥미롭게 볼 수 있습니다. 헝거는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고 셰임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간적으로 선명하게 대비되죠. 또한 헝거에서 주인공과 IRA 요원들은 안에 갇혀 있고자 하고 셰임에서 브랜든은 계속 밖에서 떠도는 인물입니다. 헝거에서 IRA 요원이 교도소 밖에서 등장하는 것은 영화상에서 단 한 번인데 그때 교도관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셰임에서는 브랜든이 도시를 떠돌아 다니다가 지하철이 멈춰서면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때 좁은 화장실에서 비극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비극이 일어나는 장소도 넓은 곳과 좁은 곳으로 대비 되죠. 말하자면 헝거에서는 정신이 육체를 가두고 지배하고자 하지만 그런 정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육체를 이끌 때 일어나는 비극을 보여주고 셰임에서는 육체가 정신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로워지고자 밖을 떠돌아 다니지만 정작 자신의 안식처인 집에서 맞게 되는 정신적인 비극을 다룹니다. 이렇듯 스티브 맥퀸 감독은 정신과 육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냉철하게 그 둘 사이의 관계를 관찰합니다. 다만 헝거는 좀 더 특수성을 띄는 이야기이고 셰임은 좀 더 보편성을 띄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언뜻 보면 헝거는 굉장히 숭고한 영화처럼 보이고 셰임은 공허한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저에게는 두 영화 모두 공허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해서 특별한 답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둘 중 무엇이 더 우선인지는 관객들의 판단에 달려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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