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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Oct 01. 2019

폴 토마스 앤더슨 부자 2부작 리뷰

N부작,사부작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먼저 감상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부작 2부작이라는 타이틀은 제가 임의로 정한 2부작입니다. 



1.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마스터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변곡점에 위치하는 작품들입니다. 이 두 작품에서부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스타일 변화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부기 나이트와 매그놀리아로 대표되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초기작은 역동적이고 화려한 편집과 카메라 워킹이 잘 나타나고 영화의 리듬도 굉장히 빠른 편입니다. 또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다중 플롯의 구조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인물들도 인생의 상승과 전락을 반복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여주죠. 그러다가 데어 윌 비 블러드 이후 스타일이 확연히 변하게 됩니다. 우선 카메라의 움직임과 편집도 굉장히 정적으로 변했고 영화의 분위기도 초기작들의 감상주의적인 색채가 사라지고 상당히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초기작들이 넓이가 넓은 영화들이라면 최근 영화들은 깊이가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초기작들이 다중 플롯의 구조로 진행되는 반면 최근 영화들은 특정 인물이 중심이 된다는 점입니다(데어 윌 비 블러드는 다니엘 플레인뷰가, 마스터는 프레디 퀠이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죠). 이때 중요한 점이 있다면 인물 그 자체뿐 만이 아니라 그 인물과 다른 인물간의 역학 관계입니다. 


2.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에서는 인물들간의 관계성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합니다. 많은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는 특정 집단에 한 인물이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많은데 이때 등장하는 집단들은 물질주의적 목표를 가진 동시에 본인들만의 기괴한 정신주의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외부의 시선에서는 이상하게 보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부기 나이트의 포르노 업계나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석유 업계와 제 3계시교, 혹은 마스터의 ‘코즈’와 팬텀 스레드의 레이놀즈의 의상실이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이러한 집단에 특정 인물이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그 집단에 들어간 뒤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구조입니다. 이때 그 집단에 들어간 인물이 그 집단 내에서 어떠한 관계로 엮이는지가 핵심입니다. 초기작에서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고 플롯도 다중 플롯이기 때문에 이 많은 인물들 사이에 얽히고 설킨 복잡한 관계가 중요해집니다(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 매그놀리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면 최근 영화들은 주로 두 인물간의 역학 관계를 많이 다룹니다. 이때 두 인물이란 한 쪽은 특정 집단을 이끄는 리더이고 다른 한 쪽은 그 집단에 새로 들어간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인물 사이에는 명확한 힘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집단의 리더가 새로 들어온 인물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관계는 계속해서 뒤바뀌고 역전됩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예로 들자면 다니엘 플레인뷰와 일라이 선데이와의 관계는 계속 역전됩니다. 초반에는 다니엘 플레인뷰가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이후에는 일라이 선데이가 우위에 있게 되고 마지막까지 가면 다시 다니엘 플레인뷰가 우위에 있게 됩니다. 이것은 다니엘 플레인뷰와 일라이 선데이가 서로에게 가하는 폭행 장면에서 잘 나타납니다. 이렇듯 최근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들은 주요 인물들간의 힘의 역학 관계가 중요합니다. 마스터에서 프레디 퀠과 랭커스터간의 관계나 팬텀 스레드에서 레이놀즈와 알마의 관계 역시 유사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3.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마스터를 좀 더 집중적으로 설명하자면 이 두 작품에서는 부자 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합니다(그래서 저는 이 두 영화를 부자 2부작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 부자 관계는 정확하게는 혈통이 이어지지 않은 유사 부자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 플레인뷰의 아들인 H.W 플레인뷰는 친아들이 아니고 프레디 퀠과 랭커스터는 서로 다른 혈통이지만 부자 관계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부자 관계가 중요하게 나오는 것은 이 두 영화가 모두 미국의 역사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20세기 초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여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인물의 성공과 실패의 인생사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입니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아무것도 없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이죠. 실제로 이를 믿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했고 이러한 사상적 배경 덕분에 현대의 최강대국 미국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이러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화의 이면에 가려진 참혹함을 다니엘 플레인뷰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이 인물은 물질적으로는 계속 성공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추락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물질적 성취를 거두는 순간은 추락의 이미지가 함께합니다). 동시에 일라이 선데이라는 인물을 통해서는 미국의 또 다른 사상적 기반인 기독교 정신의 황폐함을 그대로 드러냅니다(그렇기에 이 영화는 유신론과 무신론 간의 대결 구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나오는 인물들은 현대 미국의 성장을 이끌어낸 시기를 대변하는 아버지 역할을 맡은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현대의 미국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이라고 할 수 있죠. 반대로 마스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들 세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마스터의 주인공인 프레디 퀠은 내면 자체가 완전히 붕괴되어 어디에도 자신의 마음을 기대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떠돌아 다닙니다(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방황하지 않고 정착하는 다니엘 플레인뷰와는 정반대이죠). 이것은 프레디 퀠이라는 인물의 특수성도 있지만 아버지 세대가 이루어낸 혼란스러운 미국 안에서 가치를 정하지 못하고 불확실함 속에서 떠도는 아들 세대의 내적인 상태를 반영한 것이죠. 마스터에서 바다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계속해서 떠도는 프레디의 상태를 대변합니다. 그래서 프레디 퀠은 아버지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랭커스터라는 인물을 만나 그에게 의지하고 정착하고자 하지만 랭커스터도 그와 다를 바가 없는 나약한 인물일 뿐이고 프레디는 결국 내면의 안정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 인물은 끊임없이 방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대 미국의 실존적인 상태이니까요. 이 두 작품을 통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현대 미국에 관한 고찰을 탁월하게 담아냅니다. 


4. 앞서 말했듯이 두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유사 부자 관계입니다. 그것은 혈통으로 이어지는 특정 부자 관계를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를 표현하기 위한 설정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유사 부자 관계 안에서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아버지 세대의 황폐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마스터는 아들 세대의 황폐함을 보여줍니다. 두 작품에서 아버지 세대의 역할로 나오는 다니엘 플레인뷰와 랭커스터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이 믿지 않는 신념을 자신의 성공을 위해 끝까지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가족의 가치를 믿지 않으면서도 가족을 마케팅에 사용하고 랭커스터 역시 자신이 만든 종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인물이죠(추가로 일라이 선데이 역시 신에 대한 믿음이 없지만 물질적 성공을 위해 신을 믿는 척하는 인물로 저에게는 보입니다). 이러한 아버지 세대와는 다르게 아들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인 프레디 퀠은 자신이 믿고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인물입니다. 이것 자체가 2차 세계대전 이후 혼란스러운 미국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죠. 이렇게 명백한 대비를 나타내는 두 영화를 통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현대 미국을 이루어낸 아메리칸 드림이나 기독교 정신과 같은 정신적인 힘에 관한 고찰을 담아냅니다. 두 영화는 분위기에서도 대조를 이룹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상당히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로 진행되지만 마스터는 그보다는 좀 더 가볍고 서정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방향성은 다르지만 두 편 모두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점 외에도 이야기할 거리가 정말 많은 작품들이니 안 보셨다면 꼭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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