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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Oct 01. 2019

박찬욱 복수 3부작 리뷰

N부작,사부작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먼저 감상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 복수 3부작을 관통하는 주요 테마가 있다면 제 생각에는 아이러니와 죄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선, 세 작품은 모두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이러니란 본인이 의도한 것과 다른 결과가 일어날 때 발생하는 것이죠. 그것은 곧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누구도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복수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나 혹은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의 운명처럼 말이죠. 이것은 인간 스스로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고자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비관적 세계관이 바탕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복수 3부작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복수의 가장 큰 동기이죠. 왜냐하면 인물들은 모두 죄의식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고자 하니까요. 그래서 복수 3부작의 복수는 모두 사적인 복수입니다. 하지만 복수 3부작에는 구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의 인물들은 서로에 대한 복수로 모두 파멸에 이르고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오이디푸스 왕처럼) 자신의 죄의 근원을 알아가면서 전락하고 이우진은 복수에 성공하지만 끝내 자살하게 되죠.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금자도 마찬가지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아마도 이 인물들은 평생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겠죠. 하지만 박찬욱 감독이 “죄의식을 가지고 괴로워하는 사람은 숭고한 사람”이라고 말했듯이 어쩌면 이 인물들의 삶도 숭고하다고 볼 수 있겠죠. 그렇기에 삶의 이유도 희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숭고한 삶 그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죠. 


    

2. 개인적으로 복수 3부작을 포함한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초자아”입니다. 그러니까 감독 자신이 영화의 세계를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공간적인 맥락을 보자면 영화에서 중요한 공간적인 배경으로 나오는 장소의 경우 인위적이고 불균질한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박쥐에서 행복 한복집이나 스토커에서 인디아 가족의 집, 그리고 아가씨에서의 저택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죠).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영화에서 나오는 여러 우연적인 상황이나 아이러니가 감독의 통제하에 인위적으로 진행되는 듯한 인상이 있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면 영화에 나오는 아이러니가 영화적 전개를 위해서 있어야 할 때는 있고 없어야 할 때는 없는 상황이 많습니다. 다시 말해 영화의 필연적인 인과론을 위해 특정한 원인을 감독이 인위적으로 부여한 듯합니다. 예를 들어 하필 류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장기 밀매 스티커가 붙는 것부터 해서 동진이 류의 집을 찾아갔을 때 라디오에서 류의 사연이 흘러나오는 상황 등 이런 여러 가지 우연적인 상황들이 지나칠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또한 친절한 금자씨에서 후반부 단체 린치 시퀀스 역시 인위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죠. 이 뿐만 아니라 특정 인물이 다른 인물의 초자아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영미는 류의 모든 행동을 조종하는 초자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은 아예 영화 내내 오대수의 행동을 통제하고 예측하는 초자아로 나오죠. 이렇듯 박찬욱 감독 세계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자유 의지로 행동 한다기 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통제 받는 듯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설정이 중요하게 등장할까요? 저에게는 이 역시 앞서 말씀드린 박찬욱 감독의 염세적 세계관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고 자신의 자유 의지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설정으로 볼 수 있죠. 어떤 분들은 이런 설정이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불편하다고 보시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이런 설정도 영화의 핵심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이 스타일이 화려하다는 사실은 부정 못할 사실일 것입니다. 그것은 공간적 배경이나 내러티브 혹은 플롯에서뿐만이 아니라 편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복수 3부작에서는 교차 편집이나 플래시 백과 같이 화려한 스타일의 편집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런 식의 편집은 단순히 영화적 재미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편집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우선 인물들 사이에 얽혀진 관계를 잘 나타냅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는 류와 동진이 교차 편집되는 장면이 많은데 이것은 두 인물이 동시에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과론적인 세계관입니다. 복수 3부작에서는 과거의 어떠한 행위나 사건이 반드시 현재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인과론적인 세계관이 나타납니다(이것이 아이러니라는 중요한 테마와 충돌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아이러니는 결과로서의 아이러니가 아닌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과정에서의 아이러니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의 감금이나 이우진의 죽음은 이우진 누나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또한 복수는 나의 것에서 인물들의 복수나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의 복수 역시 과거의 사건에 비롯된 것이죠. 그렇기에 죄의식이라는 테마가 굉장히 중요하게 나옵니다. 죄의식은 과거에 사로잡힌 자에게서 나오는 감정이죠. 그렇게 과거의 죄의식에 사로잡힌 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에게 단죄를 내립니다. 즉 인간은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과거의 사건이나 행동의 영향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세계관이 복수 3부작에 깔려있습니다(물론 이 인물들이 당하는 비극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비해 너무 큰 대가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아이러니야 말로 인간의 가장 큰 실존적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편집이 현재와 과거가 중첩되는 편집입니다. 세 편의 영화에는 모두 현재의 인물이 과거의 인물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현재의 사건과 인물의 행동이 과거의 사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결국은 이 역시 앞에서 말한 박찬욱 감독의 염세적 세계관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4. 종합해서 말하자면 복수 3부작은 “아이러니와 죄의식을 통한 인간의 실존적 비극을 다룬 작품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란 결국 아이러니라는 부조리로 가득 찬 세계에서 통제할 수 없는 필연적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고 영화는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에서 인간에게 구원은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하죠. 그래서 영화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 죄의식을 가지고 괴로워하는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 숭고한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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