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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Oct 17. 2019

느림

새벽의 일기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나는 뭐든 느린 편이다.

글을 쓰는 속도도

무언가를 정하는 것도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모든 게 남들보다 느리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답답할 때가 많다.

쓰고 싶은 글은 많은데

구상도 오래 걸리고

그 구상을 글로 적으면 막상 뭔가 부족해 보이고

그러다 망설이게 되고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그렇게 한참이 지나 글을 완성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내가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로 쓰는 글인데

뭐가 그리 급하냐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쓰고 싶을 때 쓰지 못한다면

시간 속에서 그것이 쓰이지 못하고

끝내 잊히는 것이 두려운 것 같다.


사실 글 쓰는 것만이 아니다.

나는 공부하는 속도도 느리고

책 읽는 속도도 느리고

심지어 달리기도 느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시작하는 때가 늦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아버지는

나에게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너는 뭐든 남들보다 늦어. 그러니까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하지만 요새는 왠지 모르게 내가 남들보다 너무 뒤처진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내가 영화를 좀 더 일찍 좋아했다면

그럼 지금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영화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을 텐데

누구는 10대 때부터 평론을 시작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늦지

나는 왜 이렇게 모자라지


이런 고민을 친누나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러자 누나의 대답

“너보다 훨씬 늦게 시작하는 사람도 많아. 너 정도만 해도 정말 이른 시기에 시작한 거야”

어쩌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비교의식에서 생겨난 불안감은 왜 다른 비교를 통해 사라지지 않는 걸까.


조금 조급한 결론을 내리자면

그냥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고자 한다.

다 자기만의 때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저 때가 오면 그때부터 열심히 하다 보면 되는 것이 아닐까.

이러면 내 불안감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자 책상에 앉는다.

어떤 날은 글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결국 한 글자도 못 적는다.

이제 쓰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자 한다.

쓸 수 있으면 쓰고

쓰고 싶지 않으면 안 쓰면 되는 것이다.


느리더라도 괜찮다.

나의 새벽은 그렇게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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