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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Oct 31. 2019

그 엔딩, 그 시

새벽의 일기 

얼마 전에 이창동 감독의 시를 다시 보았다. 여전히 좋은 영화라는 점은 변함없이 그대로였지만 유독 엔딩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시를 남겨두고 어디론가 사라진 미자(윤복희). 그 시를 내레이션으로 낭독하는 미자. 그러다 화자가 바뀌어 그 시를 이어서 낭독하는 희진. 그리고 조용히 이어지는 풍경들. 이상하리만큼 이 엔딩은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그러다 문득 그때 나온 시를 받아적어 보고 싶었고 천천히 받아적었다. 어디에 보관할까 하다가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여기에 잠시 맡겨두고자 한다. 


아녜스의 노래 


양미자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 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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