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재 Feb 11. 2020

기생충 리뷰

그 세계의 작동 방식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를 먼저 감상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 칼 마르크스.


1. 조금 뜬금없는 질문. 수석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좀 더 정확히. 무엇이 수석을 수석으로 만드는가? 수석이라는 돌. 인간이 강가에서 가져오기 전에는 그저 하나의 돌에 불과한 그 돌이 언제부터 수석이라 불리는가? 인간이 강가에서 건지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평범한 돌이 수석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에게 값비싸게 팔린다. 민혁은 왜 수석을 기우에게 선물했을까? 가정에 많은 재물운과 합격운을 몰고 온다는 참 “상징적”인 수석. 그 수석을 유심히 쳐다보는 기우. 이때 기우가 품는 감정은 무엇인가? 돈을 벌 수 있다는 “재물운”과 대학에 합격하고 싶다는 “합격운”에 대한 욕망. 기우는 둘 중 어느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 그에게 “참으로 시의적절”한 순간에 민혁이 수석을 가지고 온다. 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기생충>은 수석에서 시작한다. 물론 수석이 등장하기 전에도 영화는 진행 중이었다. 잠시 이 프롤로그와 같은 이전의 장면들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혁이 등장하기 전 처음 등장한 기택 가족의 모습은 와이파이가 끊겨 새로운 공짜 와이파이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어째서인지 그들은 와이파이 공유기를 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렵게 와이파이를 연결한 기택 가족은 피자 박스를 접는 부업을 다 같이 하지만 4개 중 하나 꼴로 불량이 나온다. 다행히도 피자 가게 사장의 “선심”덕에 페널티를 10%밖에 받지 않고 끝난다. 정산을 받은 후 가족들은 한 자리에 모여 “핸드폰의 재개통”과 “쏟아지는 와이파이”를 축하하는 자그마한 파티를 마련한다. 그들은 드디어 다른 집 와이파이를 사용할 필요 없이 독립적으로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택 가족은 이때까지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축하할 일이 고작 “핸드폰의 재개통”과 “쏟아지는 와이파이”뿐이다. 그리고 창문 밖에서는 웬 취객이 나타나 노상방뇨를 하려고 한다.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기택은 그저 “싸지 마세요”라고 속삭이듯 말하는 게 전부이다. 한 번의 순환. 이 순환 안에서 기택 가족은 무엇을 했는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 카톡 확인을 못하던 기우는 다른 집 와이파이에 기생하여 카톡을 확인하고 피자 가게 부업을 할 수 있었고 노동한 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기생과 공생의 차이는 무엇인가? 공생은 호혜적 관계이지만 기생은 일방적 관계이다. 숙주로부터 아무런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기 위한 관계. 이 세계에서 기생은 곧 죄악이다. 노동이 없이는 대가도 없다. 기우와 기정은 분명 남의 집 와이파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말하자면 그건 와이파이에 비밀번호가 걸려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표현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기우와 기정은 남의 집 와이파이에 기생한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한 것이다.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와이파이. 그리고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집. 기택은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알기 때문에 소변 금지 팻말을 붙이지도, 소리를 질러 취객을 내쫓지도 않는다. 이 순환에서 기생은 나오지 않는다. 세계는 여전히 빈곤하지만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세계의 순환 속에 민혁이 수석을 들고 끼어든다.


2. 민혁으로 되돌아오자. 수석을 들고 기택의 집에 방문한 민혁은 기우에게 자신이 맡고 있던 다혜의 과외 선생 자리를 제안한다. 왜 하필 기우인가? 민혁의 대답은 늑대 같은 자신의 대학생 친구들보다 기우가 믿음직스럽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믿음직할까? 민혁은 다혜에게 사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 다혜가 입학하면 그녀에게 정식으로 고백할 예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한다. 그 자리에 자신의 친구들이 들어온다는 것은 다혜를 빼앗긴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는 다혜를 뺏을 수 없는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 그것이 기우이다. 기우에게는 다혜를 빼앗을 만한 능력이 없다. 아니, 정확히는 빼앗아서는 안 된다. 기우가 할 일은 오직 다혜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뿐이다. 설령 기우에게 능력이 있다고 한들 자격이 없다.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대체자의 역할. 기우는 기정이 위조한 연세대 재학 증명서를 가지고 다혜의 집으로 향한다. 다른 세계로의 진입. 마치 새로운 세상을 보는 듯한 기우. 봉준호는 그런 기우를 뒤따라가며 함께 그 아름다운 집을 둘러보듯이 찍었다. 그리고 연교와의 만남. 그녀는 서류에 무관심하다. 그 문서가 위조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녀에게는 민혁이라는 사람이 주는 신뢰감과 보증이 더 중요하다. 어떤 수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 대체자의 굴레. 그 굴레에서 어떻게 나올 것인가? 수업을 마치고 나온 기우는 연교에게 제안한다. 다송이를 위한 미술 수업. 그 수업의 선생은 제시카로 위장한 자신의 동생 기정이다. 다행히도 기정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또 다른 계획. 자신을 태워다 준 젠틀한 윤 기사의 자리를 몰아낼 계획. 그 자리에 기택이 들어선다. 마지막 한 자리. 이제 문광을 몰아내야 한다.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문광을 결핵 환자로 위장시켜 쫓아낼 계획. 모든 계획이 성공한다. 이때 계획은 무엇인가? 두 가지 방법. 하나는 능력의 증명. 내가 지금 저 자리에 있는 저 사람보다 더 우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증명. 하지만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동익의 가족은 기택이 윤 기사보다 운전을 잘하는지, 충숙이 문광보다 집안일을 더 잘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법. 공포심 유발. 그 젠틀한 윤 기사가 감히 자신의 차에서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한 뒤 더러운 흔적을 남길 것에 대한 공포. 그것도 모자라 함께 섹스를 한 여자가 마약 중독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자신이 지금껏 고용한 가사도우미가 결핵 환자라는 충격적인 사실. 똑똑한 다송이에게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까지. 이때 공포심은 직접적인 경로가 아니다. ‘나를 고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가 아닌 ‘이 사람을 계속 고용하면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는 방식. ‘내가 더 나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닌 ‘이 사람들이 안 좋은 사람’이라는 경고. 기택 가족은 세계의 작동 방식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들이 고용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특별함이 아닌 상대방의 결함을 강조해야만 한다. 결함은 곧 기생이다. 저들은 당신에게 기생하는 존재들이다. 당신 월급을 받으면서 당신 차에서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고 다니는. 당신들에게 결핵을 옮기고 다니는 기생충 같은 존재들.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당신들과 공생할 수 있다. 순진한 건지 무심한 건지 동익 가족은 기택 가족의 계획을 철썩 같이 믿는다. 그렇게 기택 가족의 계획은 아직은 성공적이다.



3. 드디어 동익 가족의 집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은 기택 가족. 이 상황을 축하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화려한 밥상과 함께 파티를 마련한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청객이 또다시 등장한다. 창문 너머로 취객이 언제나처럼 노상방뇨를 하고 있다. 마치 기택 가족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그러자 갑자기 일어난 기우는 수석을 가지고 취객을 물리치려 하지만 기택의 권유로 생수병을 대신 가지고 나간다. 그러고는 민혁처럼 “정신 차려, 정신!”이라 소리친다. 곧장 따라 나간 기택이 양동이 물을 뿌리지만 그 물은 기우를 덮친다. 이를 지켜보던 기정의 한 마디. “완전 물바다야!” 창문 너머의 물바다. 기택 가족은 곧 더 크고 화려한 창문에서 또 다른 물바다를 보게 될 것이다. 여기서의 창문. 반지하의 작은 창문과 대저택의 커다란 창문. 이 창문은 단순히 기택 가족과 동익 가족의 사회경제적 위치의 차이를 나타내는 역할만을 수행하지 않는다. 창문의 본래 역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환기. 내가 지금 있는 실내와 실외의 공기를 통하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분리. 눈으로 분명히 볼 수 있으나 엄격하게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는 경계선. <기생충>의 첫 장면에서 반지하의 창문은 열려 있었다. 첫 번째 파티에서도, 두 번째 파티에서도 창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그러나 동익의 집 거실의 창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 거실에서의 세 번째 파티. 온 가족이 1박 2일로 캠핑을 떠나 비어있는 집에 기택 가족이 파티를 연다. 훨씬 더 비싼 술과 안주와 함께. 운치 있는 정원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집은 기택 가족에 의해서 더럽혀져 있다. 그 집에는 본래 충숙만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충숙은 연교가 시킨 일만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일에는 관심이 없다. 노동력을 통해 동익 가족과 공생하던 기택 가족은 드디어 기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집에 밤 8시 55분. 초인종이 울린다.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이전에 가정부로 일했던 문광이다. 이전의 그 고고한 모습은 사라지고 초췌한 몰골로 나타난 그녀는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실성하며 초인종을 누른다. 부엌 지하실에 두고 온 무언가를 위해. 지하실 벽장을 밀어내고 나온 문 뒤에는 또 다른 지하실이 있다. 그 지하실을 내려가는 충숙과 그 뒤를 따라가는 카메라. 이전에 기우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느낀 황홀함이 이번에는 황당함과 두려움으로 변해 카메라에 담긴다. 지하실에는 문광의 남편 근세가 빚쟁이들을 피해 4년 넘게 숨어있다. 기택처럼 카스텔라 집을 하다가 망한 근세. 알 수 없는 동질감. 문광은 충숙에게 근세를 돌봐줄 것을 부탁하지만 충숙은 둘을 신고하고자 한다. 이때 문광의 말. “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 언니”. 충숙의 반박. “나 불우이웃 아니야”. 문광의 재반박. “저희는 불우해요”. 어떻게든 문광은 충숙을 자신과 같은 위치로 끌고 온다. 왜? 그래야만 하니까. 어째서? 세계의 정화를 위해. 공생을 멈추고 기생하기 시작한 기택 가족을 벌하기 위하여. 기생하는 동안 기택 가족이 누렸을 착각, 마치 자신들이 동익 가족과 같은 위치에 속한 것 같은 소속감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한 조치. 문광은 끊임없이 기택 가족을 끌어내리고 기택 가족은 저항해야 한다. 저항의 방법은 하나이다. 문광과 근세의 기생을 알리는 것. 아직 동익 가족이 모르는 자신들의 기생 대신 먼저 기생하기 시작한 두 사람을 쫓아내는 것.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자신들의 기생을 알 수 있는 이들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계단에서 미끄러져 실체가 드러난 기택 가족을 문광이 휴대폰에 담는다. 이제 전세가 역전된다. 자신이 찍은 영상으로 충숙을 협박하는 문광. 이번에는 충숙이 문광에게 동생이라 부르지만 문광은 매몰차게 걷어찬다. 이제 공생의 기회는 물 건너갔다. 무슨 공생? 같은 계급의 두 가족이 공생할 기회. 문광이 돈을 주고 충숙이 근세를 돌봐주는 공생. 마치 비밀번호 없는 와이파이를 공유하는 것처럼. 와이파이를 주고 노동력을 돌려받는 것처럼. 그러나 충숙과 문광은 모두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외면한다. 이때 동영상으로 협박하는 문광에게 기택이 소리친다. 그 동영상을 보면 그 위대한, 그 착하신 박 사장님과 사모님이 얼마나 놀라게 될지를 걱정하는 기택. 기택 가족에게 남은 방법은 숙주에게 더 깊이 들어가는 방법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숙주가 없다. 현재로선 문광과 근세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무릎 꿇고 손 들고 있는 기택 가족을 바라보며 황홀한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은 어느새 자신들의 상상에 빠진다. 햇살 좋은 날 음악을 들으며 오붓하게 남궁현자 선생의 예술적 터치를 느끼는 상상. 예술을 아는 자신들과 위대한 남궁현자 선생의 집을 더럽힌 기택 가족은 전혀 다르다는 착각. 이런, 기택 가족과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이제는 기택 가족이 문광 부부를 착각에서 끌어내야 한다. 두 기생충이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 이 싸움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집에 동익 가족이 돌아온다.


4. 계곡물이 불어나 이르게 집에 돌아가는 동익 가족의 눈을 피해 재빠르게 집을 치우고 문광 부부를 지하실에 가두는 기택 가족. 집은 빠르게 정돈된다. 새로운 정화 방식. 숙주가 직접 기생을 제거하는 것. 눈에 띄면 안 되는 기생충은 빠르게 사라진다. 기정은 거실 책상 밑으로, 기우는 다혜 방 침대 밑으로, 그리고 기택은 지하실로 문광과 근세를 데리고 숨는다. 기택은 근세가 사는 지하실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마치 자신의 집인 것 같은. 그러나 나의 집은 아니다. 아니, 나의 집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근세에게 기택이 묻는다. “당신 계획도 없지?” 다시 한번 근세와 자신을 분리시킨다. 그러나 근세가 답한다. “아저씨 나이는 알잖아. 모스 부호”. 근세는 자신의 숙주인 동익에게 모스 부호로 감사 인사를 올린다. 기택이 식구들과의 파티에서 위대한 박 사장님께 감사하듯이, 근세도 항상 자신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동익에게 감사드린다. 아무래도 근세는 이 지하실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런 근세가 기택에게 부탁한다. 여기서 계속 살게 해 달라고. 뭔가 불길한 부탁. 근세는 기택과 점점 하나가 되어간다. 그러나 기택이 여전히 거부한다. 사태를 정리하고 빠져나가려는 기택 가족을 이번에는 다송이 막는다. 다송은 취소된 캠핑을 대신해서 방수가 되는 인디언 텐트를 들고 정원에서 잔다. 그런 다송을 휴대폰으로 찍고 동영상을 자신이 사랑하는 기우에게 보내는 다혜. 카톡 내용을 보니 다혜는 그런 다송이 어지간히 싫은 모양이다. 다혜는 기우에게 계속 다송이에 대한 질투 혹은 혐오의 감정을 드러냈다. 예술가 코스프레를 하고 인디언 흉내를 내며 빗속에서 난동을 피우는 다송이를 다혜는 이해할 수 없다. 다송이는 보이 스카우트에서부터 인디언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이 스카우트를 나온 다송이는 근세처럼 모스 부호를 안다. 다송이는 자신이 가난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락한 자신의 집 대신 인디언 텐트와 함께 캠핑을 하면서. 분명히 다송이는 기택과 충숙의 냄새를 제일 먼저 눈치챘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 전혀 모른다. 그리고 다송이는 가난의 실체를 모른다. 실제로 자신의 눈 앞에 가난한 근세가 나타났을 때는 그것이 귀신인 줄 알았다. 다혜는 이러한 다송의 무지를 아는 것이다. 다혜 역시 가난에 대하여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대신 가난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해할 필요가 없다. 이미 풍족한 자신의 삶에 무슨 이유로 가난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가? 이러한 무지로 인해 자신의 바로 옆에 가난한 기우가 왔음에도, 자신을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이 왔음에도 이를 모른다. 가난을 이해할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과 내 곁에 가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지. 그렇다면 동익은 어떠한가? 그는 다송이처럼 가난의 냄새를 알고 있다. 그러나 가난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에게 가난은 지하철 타는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냄새처럼 피하고 싶은 것, 무언가 부족한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유해한 것(설리반의 여행 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대화를 기택이 들어버렸다. 간신히 집을 빠져나온 기택 가족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향한다. 창문 밖으로 바라보던,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되던 그 비를 자신이 맞고 있다. 밖은 완전히 물바다다.



5. 드디어 숙주에게서 기생충이 빠져나왔다. 이제 세계는 이들을 깨끗하게 정화해야 한다. 수직으로 내려오는 물방울들. 수직으로 내려오는 기택 가족. 봉준호 영화에서 끊임없이 강조되는 수직 운동. 이때의 물은 정화의 의미를 지닌다. 동익의 집에 기생한 기택 가족을 벌하는, 더럽혀진 동익의 집을 깨끗하게 하는 비. 이 비에 씻겨 내려간 불순물들은 전부 아래로 모인다. 우리는 이미 정화되는 기택 가족을 본 적이 있다. 취객을 쫓아내기 위해 기택이 뿌린 물에 젖은 기우. 자신의 집을 정화하려고 하던 기택은 정화에 실패한다. 그에게는 정화의 자격이 없다. 도리어 자격 없이 정화를 시도한 기우를 벌하게 된다. 마치 정신 차리라는 듯이. 그 물을, 이제는 기택과 기우, 기정이 모두 맞고 있다. 동익의 집에서 자신의 집까지 한없이 먼 길을 걸어가는 그들을 봉준호는 정색을 하며 지켜본다. 처음 동익의 집을 들어갈 때와 지하실에 들어갈 때와는 전혀 다른 카메라의 감정과 시점. 비를 맞으며 내려오던 기정이 묻는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계획이 뭐냐고?” 갑자기 기우가 말한다. “근데 아까부터 드는 생각인데, 민혁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그러자 기정을 짜증 난다는 듯이 대답한다. “민혁 오빠한테는 절대 이런 일이 안 생기지!” 맞는 말이다. 이 당연한 질문을 기우는 왜 한 것인가? 다시 민혁이 수석을 가지고 왔을 때로 돌아와야 한다. 집안에 재물운과 합격운을 가지고 온다는 그 수석. 그 상징적인 수석에 반한 기우의 욕망. 그러나 수석은 엄연히 그저 돌이다. 아무 의미 없는 돌. 재물운과 합격운에 대한 기우의 욕망처럼 허황된 수석의 의미. 마치 기우의 계획처럼. 민혁이 기우에게 자신의 자리를 제안한 것은 기우를 부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대체자 역할을 수행하라고 한 것뿐이다. 그러나 기우는 이를 오독하였다. 자신이 사랑하면 안 되는 다혜를 사랑하고 민혁이 제안한 자신의 자리 이외에도 가족들을 위한 자리까지 만들었다. 선을 완전히 넘었다. 이 오독의 출발점에는 수석이 있다. 그 상징적인 수석만 없었다면, 그러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만 수석이 내 것이 아니다. 민혁이 준 것이다. 결국 기우가 그 질문을 한 것은 이 모든 사태의 책임과 원인을 민혁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기생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떠넘길 수 없는 무언가. 수석을 준 것은 민혁이지만 이를 오독한 것은 기우 자신이다.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 이 죄책감은 곧 또 다른 비극으로 돌아올 것이다. 기택이 기우와 기정의 대화에 끼어들며 말한다. “우리 식구들 말고 아무도 모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알겠어?” 하지만 착각이다. 동익 가족은 보지 못했지만 세계는, 지금 기택 가족에게 이 엄청난 폭우를 내리고 있는 세계는 그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문광과 근세가 직접 보았다. 기택의 마지막 한 마디. “아빠가 다 계획이 있으니까 너희들은 그냥 잊어버리라고”. 잊어버리라고? 무엇을 잊어버리라는 것인가? 방금 일어난 그 일을 잊어버리는 확실한 방법은 단 하나이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 김 기사도, 케빈 선생님도, 제시카도 아닌 그냥 반지하에 살던 기택 가족이 되는 것. 하지만 어떻게? 기택 가족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 그리고 세계가 이를 바로잡고 있다. 정화를 위해 내려오던 비가 기택 가족의 집을 집어삼킨다. 동익의 집 정원을 적시던 그 깨끗한 물이 구정물이 되어 돌아온다. 이때 집을 정리하던 기택 가족과 지하실의 문광 부부가 교차 편집 된다. 변기에 토하는 문광과 역류하는 변기. 자신들의 행동의 결과가 고스란히 돌아온다. 기정은 역류하는 변기에 앉아 쳐량하게 담배를 태운다. 그 자리는 원래 어떤 자리인가? 기우와 기정이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올라갔던 그 자리. 함께 와이파이를 공유하던 그 자리는 분노 섞인 역류로 더러워졌다. 변기 위에 앉아봐도 역류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침수되는 집을 정리하던 중 기우의 손에 수석이 떠오른다. 그 무거운 수석이, 자신의 가족을 이 지경으로 만든 수석이, 마치 부력이라도 있듯이. 수석을 가만히 지켜보는 기우. 그리고 다음 쇼트. 텐트에서 다송이 깜빡이는 전구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근세의 간절한 구조 신호를 해석하는 다송. 하지만 노트에는 문장 없이 그저 몇 개의 철자만이 있을 뿐이다. 각자 자신의 허황된 믿음을 바라보는 기우와 다송. 그 빗속에서도 수석을 끝까지 지키는 기우는 기택에게 묻는다. “아버지, 아까 그 계획이 뭐예요?” 기택의 대답. “너,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 줄 아니? 무계획이야”. 이때 무계획은 무엇인가?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 그 말은 곧 계획을 세우기 전 원래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치 근세처럼. 기택은 이제 깨달았다. 자신과 근세가 서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임을. 그러나 기우는 아닌 듯하다. 그에게는 아직 스스로 떨쳐 내야할 죄책감이 남아있다. 기우는 자신에게 계속 달라붙는 수석을 껴안고 잠에 든다.


6. 다음날 다송이의 생일 파티를 위해 기택 가족을 연교가 호출한다. 어제 내린 비 덕분에 하늘이 맑고 미세먼지가 없다. 불순물을 씻어낸 세계는 이를 축하하려는 듯이 다송이의 생일 파티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늘은 일요일 아침이다. 일하면 안 되는 날. 쉬어야 하는 날에 연교가 기택 가족을 부른다. 이건 일이다. 다송이와 함께 놀아주는 일. 인디언 복장을 입고 다송이를 놀라게 해 주고, 다송이에게 트라우마 극복 케이크를 전달하는 일. 하지만 이건 기택 가족의 일이 아니다. 이 순간 기택은 김 기사가 아니고, 기정은 제시카가 아니고, 기우는 케빈이 아니다. 새로운 기생. 이번에는 순서가 바뀌었다. 노동력을 제공받지만 대가는 없는 일. 그렇지만 세계는 이 기생을 처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화려한 생일 파티는 계속되는 와중에 다혜와 함께 방에 있던 기우는 이 파티를 지켜보며 다혜에게 묻는다. “나 잘 어울려?” 이 질문을 하는 기우 앞에는 창문에 막혀 흐릿한 풍경만이 보인다. 그 깨끗한 기우의 시점 쇼트와는 달리. 아무래도 그리 잘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저 군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나와 내 가족을 계속 끌어내리는, 저 지하실의 부부를 없애야만 한다. 수석을 꺼내 지하실로 향하는 기우. 나의 죄책감으로 가득한 수석. 이 죄책감을 씻어야만 한다. 그러나 내려가던 중 실수로 놓친 수석이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어제와 비슷한 일이다. 무언가 불길한 징후이다. 기우의 눈 앞에 피를 흘리고 죽어있는 문광이 보인다. 그 뒤에서 근세가 기우를 공격한다. 근세를 피해 위로 달아나던 기우는 결국 근세가 던진 수석에 맞아 기절한다. 그 수석이, 나에게 재물운과 합격운을 가져다 줄 거라고 믿었던 수석이, 문광 부부를 죽이기 위해 들고 가던 수석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 수석의 주인이 바뀌었다. 근세에게 수석은 그저 돌덩어리일 뿐이다. 누군가를 죽이기 좋은, 그 돌덩어리로 한번 더 기우의 머리를 내려치고 근세는 더 이상 돌덩어리에 관심이 없다. 거실로 올라온 근세는 칼을 집어 든다. 아무래도 칼이 돌보다는 누군가를 죽이기 더 편할 것이다. 충숙과 기정이 배가 고플 것이라고 생각했던 근세는 어째서인지 먹을 것이 관심이 없어 보인다. 파티가 열리는 정원으로 나간 근세. 곧장 다송이에게 케이크를 전달하는 기정을 찌르는 근세. 한 가지 의문. 왜 충숙이 아닌 기정인가? 내 아내를 계단 밑으로 밀었던, 내 아내를 죽인 충숙이 아닌 근세와 그다지 상관도 없어 보이는 기정인가? 단순한 감정적 흥분의 결과인가? 잠시 영화 밖에서 근거를 찾아보자. 봉준호는 <기생충> 이전에 이 영화의 제목을 <데칼코마니>로 하고자 했다. 정확한 대칭의 데칼코마니. 기택 가족은 동익 가족과 끊임없이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동익 가족이 허락하지 않는다. 연교는 충숙과 하나가 되기에는 집안일을 못한다. 기택은 동익과 하나가 되고 싶어도 운전기사로서 오직 앞 만을 바라봐야 한다. 그렇다면 문광 부부와는 어떠한가? 자신을 끊임없이 끌어내리는 문광 부부.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다. 근세가 기택과 하나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걸림돌은 기택의 아이들이다. 기택을 가장으로 만드는, 기택과 근세 사이의 간극을 만드는 가장 큰 존재들을 없애야 한다. 운 좋게도 자신을 먼저 찾아온 기우를 제거(했다고 생각)했으니 이제 기정을 없애야 한다. 쓰러진 기정과 이를 지켜보는 다송. 귀신으로만 생각하던 가난의 실체를 눈 앞에서 목격한 뒤 기절하는 다송. 근세가 소리친다. 충숙에게 나오라고. 자신의 아내를 죽인 충숙을. 이제 남은 것은 하나이다. 더 이상 자신의 곁에 없는 아내처럼, 기택의 아내도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게 완벽하다. 드디어 기택과 하나가 된다. 그러나 충숙이 저항한다. 충숙은 지금 기택의 아내가 아닌 여전히 동익 가족의 가정부이다. 도리어 충숙에게 칼을 맞고 쓰러지는 근세. 이 상황을 기택이 지켜본다. 이 혼란의 현장을. 피를 흘리며 쓰러진 기우와 기정. 자신에게 기사로서 계속 차 키를 던지라는 동익. 그 동익에게 “리스펙”을 외치는 근세. 그렇지만 동익은 근세를 모른다. 오로지 그 밑에 깔려있는 자신의 차 키만이 중요하다. 차 키를 꺼내는 중 근세의 냄새로 인해 코를 막는 동익과 그걸 지켜보는 기택. 바로 전날 소파에서, 오늘 아침 차에서 동익과 연교를 불편하게 한 그 냄새가, 근세에게서 퍼져 나온다. 근세와 기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갈라놓고 있던 경계가 이 냄새로 무너진다. 이제 동익은 눈치챘다. 김 기사에게서 나던 냄새의 근원을. 그 냄새의 정체와 기택의 정체를. 근세가 죽어간다. 그 자리가 비어있다. 대칭에 문제가 생겼다. 기택은 아직 김 기사이고 충숙은 아직 동익 가족의 가정부이다. 기택과 충숙이 근세와 문광의 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김 기사라는, 동익 가족의 가정부라는 껍데기를 벗어야 한다. 비어있는 근세와 문광의 자리. 기택은 그 자리를 채워야 한다. 일순간 기택과 근세가, 드디어 하나가 된다. 이제 기택은 김 기사가 아니다. 숙주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챈 이상,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기택이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이다. 가장으로서 그 모든 책임과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자신의 딸을 죽인 그 칼로 동익을 찌르는 기택. 드디어 숙주가 죽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완벽한 대칭. 문광의 자리에 충숙이, 근세의 자리에 기택이 자리한다. 모든 것이 원위치로 돌아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세계는 원래의 모습을 다시 갖춘다. 이제 기택이 갈 수 있는 곳은 하나이다. 문광이 꺼놓은 CCTV를 이용해 지하실로 향하는 기택. 그리고 얼마 뒤 깨어난 기우. 그의 눈 앞에 형사같이 안 생긴 형사가, 의사같이 안 생긴 의사가 있다. 자신의 계획을 이룬 그 사람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욕망을 이룬 사람이 자신의 눈 앞에 있는 황당함과 무력함. 기우와 충숙은 집행유예를 선고받는다. 대신 그 짐은 기택이 지하실에서 대신 짊어지고 있다. 그 사이 세계는 빠르게 자리 잡는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기택이 보낸 모스 부호를 발견하는 기우. 이제 수석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기우는 여전히 상상한다. 돈을 벌어 그 집을 사겠다는 상상. 그리고 아버지와 재회하겠다는 상상. 그 상상을 하는 기우의 주변에는 전에 있던 화창한 햇살과 활짝 열려있던 창문 대신 냉혹한 어둠과 차가운 눈, 그리고 굳게 닫힌 창문만이 남아있다.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기우. 그 기우를 조용히 쳐다보던 봉준호는 살며시 눈을 감으며 그들을 떠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을 카피하다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