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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Sep 05. 2021

예술과 스포츠(적인 예술)

둘 사이의 화해는 불가능할까?

개인적으로 스포츠에 꽤나 관심이 있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고 유럽축구가 시작하는 시즌이면 (지금은 못하고 있지만)밤을 세워 주요 경기를 챙겨보고 그에 관한 분석들을 찾아보고는 한다. 또 최근에는 UFC에도 관심이 많이 생겼고 가끔 시간이 날 때면 야구나 테니스 같은 스포츠를 틀어놓기도 한다. 단순하게 자랑하기 위해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스포츠를 좋아한다고 잘못된 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우리나라 시네필들 중에서는 스포츠에 관심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보인다. 정반대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영화나 다른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 역시 많지는 않은 것만 같다. 물론 이 견해는 얼마 되지도 않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나치게 빠르게 일반화된 나의 편협한 시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두 영역에 모두 들어서 있는 나로서는 그 사이에서 명확하게 느껴지는 어떤 간극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그 간극을 만들어내는가? 그건 극복 불가능한 것인가?


2017년 메릴 스트립은 골든글로브에서 공로상을 수상하며 세간의 화재가 되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내용의 주된 핵심은 당시 무수히 많은 논란을 빚어내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에 대한 비판이었다. 소감이 발표된 후 많은 사람들은 명연설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 소감을 듣던 중 나는 한 가지 이상하고도 불편한 대목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할리우드는 외부인과 외국인으로 가득 찬 곳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모두 쫓아낸다면 우리는 평생 미식축구와 격투기만 보면서 살아야 할 겁니다. 그것들은 예술이 아닙니다". 이 대목의 핵심은 물론 '미식축구'와 '격투기'에 있다. 실제로 UFC 회장인 데이나 화이트는 이 발언에 대해 불쾌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메릴 스트립이 보기에 미식축구나 격투기와 같은 스포츠는 다양성으로 가득 찬 할리우드보다 뒤떨어진 곳에 불과할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술과 스포츠 사이의 우열의 문제가 아닌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 사이의 분리에 있다. 왜 둘은 분리되는가?


잠시 스포츠의 특징을 살펴보자. 스포츠를 볼 때 우리는 온전하게 스포츠에만 집중한다. 여기에는 현실의 문제가 개입할 여지도, 필요도 없다. 스포츠의 세계는 자신만의 질서와 논리를 통해 작동한다. 축구를 볼 때 중요한 것은 지금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아닌 지금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경기의 내용과 감독의 전술, 승패의 유무이다. 다시 말해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동시에 폐쇄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또한 경기를 분석할 때 필요한 지식들, 가령 선수에 대한 정보나 감독의 용병술과 같은 문제들은 엄밀히 말하면 현실 세계와 관련이 없는 지식들이다. 펩 과르디올라의 전술이 어떠하든, 메시와 호날두의 플레이스타일이 어떠하든,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를 어떤 팀이 우승하든, 월드컵을 어떤 나라가 우승하든, 메이저리그를 누가 우승하든, UFC 헤비급 챔피언이 누가 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것들은 우리가 겪고있는 어떤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러니까 흔히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스포츠를 관람한다는 말은 단순히 경기의 열기를 느끼는 것을 넘어 현실 세계의 문제로부터 잠시나마 도피하기 위함이다. 한 가지 반박. 그러나 스포츠를 관람할 때도 현실의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가? 예컨대 해당 스포츠를 관장하는 나라의 문화나 경제구조, 팬들의 사회문화적 배경, 그 외의 수많은 요소들을 계산에 포함하며 스포츠를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아닌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때 작동하는 논리가 현실세계의 논리가 아닌 스포츠 안에서만 적용되는 산업의 논리라는 것이다. 코로나라는 현실의 논리는 스포츠 산업 안에서 무관중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는 있어도 무관중 자체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건 집합 관계에서 산업의 논리는 현실의 논리 안에 포함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산업은 자신만의 고유한 논리를 만들어가며 작동한다. 이 자리에 현실의 문제를 들고 오는 것은 금기시된다. 그러니 스포츠에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 팬들의 지탄, 심하면 징계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 예술은 어떠한가? 다시 한번 꺼내는 상투적인 말. "좋은 영화는 극장 바깥에서 시작하는 영화이다". 이 말의 의미는 모두 알 것이다. 예술이란 결국 세상과 융화되고 동시에 그러한 세상에 대하여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다. 예술가의 의무이자 책임. 마주한 세계 앞에서 질문하는 것. 그러니 예술 안에는 당연히 수많은 현실의 문제가 개입하게 된다. 그건 세계의 부조리라는 심연과 마주할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도피하지 않는 용기. 나는 마틴 스콜세지가 시네마와 테마파크를 구분한 것 역시 이러한 취지에서라고 보는 입장이다. (적어도 마틴 스콜세지 입장에서)모든 영화가 시네마인 것은 아니다. 어떤 영화는 스포츠처럼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세계를 만들어 관객을 현실 세계의 문제로부터 도피시킨다. 그런 영화는 그저 잠깐의 스릴을 즐기는 테마파크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3S정책에 포함된 영화(Screen)는 예술로서의 영화(Cinema)가 아닌 그러한 테마파크이다(그러고보니 3S정책에는 스포츠(Sport)도 포함되는 않는가?). 아마도 메릴 스트립은 스포츠의 그러한 도피를 경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디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술이 스포츠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조차도 그러한 도피를 매일 즐기는 사람이다. 그저 각자 다른 영역을 맡고 있을 뿐이다. 오락의 진정한 힘은 이러한 도피를 통해 우리에게 잠시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에 있다. 마블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유는 현실세계의 논리가 아닌 마블이 창조한 본연의 세계의 논리를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폐쇄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무가치하게 볼 수는 없다. 다만 메릴 스트립과 마틴 스콜세지, 혹은 시네필들의 근심이라면 시네마의 영역이 점차 테마파크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최근의 현실일 것이다. 이때 가장 난처한 문제는 단순히 사람들이 더 이상 시네마가 아닌 테마파크만을 찾는 것에 있지 않다. 시네마의 영역이 테마파크에게 잠식될 때 시네마의 영역에도 점차 테마파크의 논리가 작동한다. 그러면서 영화에 대해서 관객이 적용하는 기준은 오로지 테마파크의 잣대만이 남는다. 재미있거나 재미없거나. 이 잣대 안에서 시네마의 가치, 세계를 마주하기 위한 노력은 무의미해진다. 즉 한 영역의 논리가 다른 영역에까지 침투할 때 근본주의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건 곧 이해와 존중의 문제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해, 그 이해 이전의 존중. 시네마를 시네마의 잣대로 볼 수 있는 이해심. 테마파크가 가지는 가치에 대한 존중. 지금 스포츠와 예술 사이, 그리고 영화계에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상생의 노력이 아닐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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