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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Oct 01. 2019

세상의 모든 계절 리뷰

행복과 불행 사이의 참으로 씁쓸한 관계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를 먼저 감상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행복의 비결은 남으로 하여금 자신이 행복을 주는 존재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알 배트.


1. 여기 누가 보더라도 행복해 보이는 부부가 있다. 톰과 제리는 그들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톰의 직업은 지질학자로 지질을 통해 건설계획의 가능성을 조사한다. 제리는 정신과에서 상담사로 일하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를 도와준다. 두 직업의 공통점은 원인을 파악하거나 방향을 제시해 줄 수는 있지만, 직접적인 해결을 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지질학자는 건설계획의 가능성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건설을 직접 도와주지는 못하고 상담사는 상담을 통해 정신적인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는 있지만, 직접적인 해결은 환자 본인의 책임이다. 이러한 부부에게 누가 보더라도 불행해 보이는 메리가 찾아온다. 제리의 직장 동료인 메리는 과거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톰과 제리의 집에 찾아와 그들에게 하소연한다. 메리의 이러한 태도는 영화의 초반 메리가 상담하던 환자의 태도와 대비된다. 자신의 과거와 불행을 모두 털어놓는 메리와 달리 환자는 제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않는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도 “당신이 알아서 뭐하게요?”라고 대답하고 변화가 두렵냐는 질문에도 “변하는 건 없어요.”라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 환자에게서는 오로지 현재의 불행에 대한 체념만이 보일 뿐이다. 이에 반해 메리는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이 가득한 톰과 제리의 집에 찾아가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말하자면 그녀는 행복한 자에게 행복을 구걸하는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따뜻해 보이는 톰과 제리의 태도와 달리 이미 그들 부부는 메리에게 지쳐있다.


2. 영화는 사계절이 각각 하나의 챕터를 이루고 있다. 봄부터 겨울까지 네 개의 챕터가 진행될 동안 톰과 제리는 농장을 가꾼다. 농장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봄과 여름에 작물을 심으며 가꾸고 가을에 수확물을 거두고 겨울에는 시든 작물들을 정리한다. 그리고 그동안 톰과 제리 부부에게 큰 불행은 닥치지 않는다. 겨울에 톰의 형인 로니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긴 하지만 그것이 커다란 불행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반면 메리는 사계절 동안 여러 변화를 맞는다. 봄에는 불행 속에서도 차를 살 계획을 세우며 행복을 꿈꾸고 여름에는 실제로 차를 산다. 하지만 가을에 차가 고장 나고 겨울에는 톰과 제리에게 냉대받게 된다. 사계절의 변화는 메리의 행복의 변화인 동시에 메리와 톰과 제리 부부 사이의 관계 변화이다. 말하자면 메리는 톰과 제리 부부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다. 불행에 빠진 그녀는 행복을 찾기 위해 행복한 자들과 행복감을 함께 느끼고자 한다. 그래서 메리는 여름에 톰과 제리가 연 바비큐 파티에서 그들의 아들인 조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가을에 조가 케이티와 사귄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진다. 이것은 단순히 메리가 조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조의 행복을 질투하는 것이다. 메리는 톰과 제리가 가진 행복을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질투심을 느낀다(부러움의 감정은 필연적으로 질투심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조와의 좋은 관계를 톰과 제리의 행복을 함께 공유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이러한 질투심은 톰과 제리를 더욱 지치게 만든다. 스스로 자기 삶을 해쳐가지 못하고 의존적인 삶을 사려고 하는 메리를 처음에는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녀를 받아주지만 더는 남아있는 연민이 없는 겨울이 되자 냉소적으로 변하게 된다. 겨울에는 메리와 같이 불행한 일을 겪은 로니가 부부의 집에 들어오게 되고 이제 그 집에 메리의 자리는 없다. 동정이나 연민은 혈육의 벽을 넘기는 어려운 것이다.



3. 영화에서 메리와 유사한 듯 다른 인물이 있다면 바로 켄이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대부분 톰과 제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메리는 극 중에서 수많은 불행을 당하고 그것을 톰과 제리에게 하소연하듯이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사건 자체는 극 중에서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외적인 장면들이 몇 차례 있는데 그 장면들에는 모두 켄이 등장한다. 여름 챕터가 시작될 때 첫 장면은 켄이 기차를 타고 톰과 제리에게 오는 장면이다. 또한, 켄이 떠나기 전 메리와 함께 차에 있는 장면이나 켄이 타고 떠나는 기차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켄 역시 메리처럼 불행에 빠진 인물이다. 하지만 메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톰과 제리에게 의존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모든 계절 톰과 제리에게 찾아오는 메리와 달리 가장 농장이 활기를 띠고 부부가 베풀 수 있는 사랑이 가장 많은 여름에만 찾아온다. 그래서 영화는 켄이 부부에게 찾아오고 떠나는 장면을 굳이 챕터의 앞과 뒤에 넣는다. 그것은 켄이 이들 부부에게 찾아오는 것은 일회적인 동시에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켄은 떠난 뒤에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메리는 그러한 켄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관심을 보이자 그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행복을 바라는 그녀는 자신처럼 불행에 빠진 켄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오로지 행복해 보이는 톰과 제리를 통해서 행복을 얻기를 원할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의존적인 삶을 살던 메리는 결국, 불행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물론 그녀가 켄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그녀가 행복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일 뿐 결코 주변에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4. 세상의 모든 계절의 원제는 “Another Year”, 즉 “또 다른 해”이다. 또 다른 해가 찾아오면 다시 계절의 순환과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메리의 계절에도 겨울 뒤에 봄이 찾아온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을 떠올려보자. 봄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장면은 행복으로 가득 찬 얼굴이 아닌 불행으로 인해 수심이 가득한 여인의 얼굴이다. 이것이 다음에 찾아올 봄, 메리의 처지일 수도 있다. 마지막 식사 전 메리는 제리와의 대화에서 제리에게 상담사를 만나볼 것을 제안받는다. 메리의 불행을 봐주는데 지쳐버린 제리는 인간 대 인간이 아닌 상담사와 환자로서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한다. 이는 “더 이상은 너의 불행을 봐주지 않을 것이니 네가 직접 너의 불행을 극복해라.”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식사하는 톰과 제리의 가족들 사이 메리는 홀로 슬픔에 잠겨있다. 그리고 대화 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 침묵이 메리를 감싼다. 분명 함께 있지만 홀로 동떨어진 메리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앞에서 말했듯 이 영화는 대부분 톰과 제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우리는 메리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메리의 모습이 오늘날 행복을 구걸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메리에게도 희망은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희망은 다음 봄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제리의 제안대로 전문적인 상담을 받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불행을 인정하거나 극복하고자 한다면 어쩌면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화는 다음 봄을 보여주지 않고 끝나게 된다. 그리고 봄이 오더라도 그녀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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