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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Oct 01. 2019

고스트 스토리 리뷰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유령들의 이야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영화를 먼저 감상하신 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고스트 스토리는 죽은 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철저히 죽은 자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어버린 유령의 상실감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공기를 차갑고 쓸쓸하게 만든다. 고스트 스토리의 주제는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보편적인 주제이다. 사랑을 잃은 자의 공허와 상실. 이것만큼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주제도 드물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의 유령도 특별한 모습이 아닌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영화는 두 주인공에게 이름조차 부여하지 않고 C와 M이라는 이니셜로 부른다. 이를 통해 이 이야기가 특정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더욱 확실히 드러낸다.


2. 영화는 C의 죽음과 상실을 운명론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즉 C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던 셈이다. 프롤로그를 제외한 첫 번째 신을 기억해보자. C와 M이 자고 있던 도중에 거실의 피아노가 울린다. 영화의 끝에 가서야 우리는 그것이 C의 유령이 울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미 그때부터 C의 유령은 존재했고 C의 죽음도 예견되어 있는 셈이다. C가 M에게 들려준 노래의 가사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 노래의 내용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후 상실감에 빠진 사람에 대한 내용이다. 이 노래의 화자는 C로 보이고 노래에 등장하는 그녀는 M으로 보인다. 이 노래는 이미 C의 죽음을 예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반부에 등장하는 예언자(영화에서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엔딩 크레딧에서 그의 배역이 예언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가 하는 말은 유령의 운명을 말하는 것과 같다. 파티에서 예언자가 하는 말을 요약하자면 “모든 사람은 죽기 전에 자신의 흔적과 유산을 남기고 자신이 죽고 나면 사람들은 그 유산을 보면서 자신을 기억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도 언젠가는 잊혀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후반부에 나타나는 유령의 운명과 일맥상통한다. C의 유령은 M에게 계속 기억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C는 시간이 지나 다른 남자를 만나기도 하고 결국 이사를 간다. 유령은 계속 그 집에서 M을 기다리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고 집은 허물어지게 된다. 이것은 비단 C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기억되기를 바라고 자신만의 유산을 남긴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자신을 잊어간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보편적이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3. C의 유령은 마치 시간을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C의 유령에게 시간은 균질적으로 흘러간다기보다는 불규칙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위에서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관객들은 느끼게 된다. 유령의 시간은 뒤로 갈수록 점점 압축되어 빠르게 흘러간다. 처음 유령의 시간은 M이 체감하는 시간과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유령의 시간은 점점 빠르게 흘러가고 시간을 건너뛰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C가 M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잊혀지는 속도이다. C를 잃은 상실감으로 가득 찬 M은 처음에는 그를 계속 그리워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잊어버린다. 그리고 M이 이사를 가고 멕시코인 가족이 새로 이사를 오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의 추억이 담긴 공간에 침입했다고 생각한 유령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가족을 내쫓는다. 하지만 그 뒤에도 그 집은 젊은이들의 파티 장소가 되고 세월이 지나 허물어지고 그 집터에 새로운 빌딩이 들어서게 된다. C의 존재는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게 된다. 그러자 유령은 현세를 벗어나고자 건물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영화는 유령을 갑자기 과거로 보낸다. 서부 개척 시대로 간 유령은 넓은 평야 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한 가족을 본다. 그리고 가족 중 한 여자아이가 자신의 메모를 바위 밑에 숨기는 것을 본다. 이것은 M이 하는 행위와 같은 행위이다. M은 언제나 이사를 가기 전 집에 자신의 메모를 숨겨놓고 왔다고 말했다. C와 함께 살았던 집 역시 마찬가지로 이사를 가기 전 벽에 난 작은 틈새 사이로 메모를 적어 숨겨놓았다. 유령을 그 메모를 보기 위해 벽을 긁어낸다. 하지만 메모를 보기 전에 집이 허물어지고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다. 소녀의 메모도 마찬가지이다. 소녀의 가족은 인디언의 공격으로 모두 죽게 되고 메모는 바위 밑에 남겨진다. 또 다시 빠르게 시간을 흘려 보낸 유령은 소녀의 시체와 메모가 있었던 장소가 바로 자신과 M이 살았던 집 터라는 것을 알게 된다. C와 M의 이야기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유령이 아직 현세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해당 시퀀스를 통해 유령에게 알려준다. 그는 아직 현세에 남아있을 이유가 있다. 그것은 M의 메모를 보지 못한 것이다. M의 메모는 그 집에 대한 추억이고 집에 대한 추억은 곧 C에 대한 추억이다. M의 추억이 남아있는 한 C는 계속 현세에 존재한다.


4. 영화에는 C의 유령 말고도 이웃집에 있는 유령이 등장한다. 이웃집 유령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C의 집과 함께 자신의 집이 무너지자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현세를 떠난다. 이 유령은 자신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잊어버릴 정도로 자신의 기억에 무뎌진 상태이다. 그것은 그만큼 누군가를 오래 기다렸다는 증거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린 상대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유령이 현세에 남아 그 사람을 기다릴 이유는 없다. 때문에 유령을 현세를 떠나 사라진다. 기다릴 사람이 없다는 것은 잊혀졌다는 것이다. 진정한 실존적 죽음은 타인에게서 잊혀질 때 비로서 찾아온다. 그래서 영화는 C를 현세에 붙잡아 둔다. M의 메모에 담긴 추억이 집에 남아있는 한 C는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C가 마침내 메모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 뒤 그제서야 C의 유령은 현세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메모의 내용을 관객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과거에 소녀가 바위 밑에 넣어둔 메모의 내용 역시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가 관객을 C와 M의 추억에 관객을 개입시키지 않으면서 그들의 추억에 대해 배려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둘만의 추억이고 메모의 내용은 관객이 보아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영화가 다시 한번 보편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누구나 본인만이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C의 자리에는 관객이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대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고스트 스토리는 유령을 위한 영화이다. 삶을 잃고 난 뒤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령의 상실감과 공허함을 담아내면서도 유령에게 작은 배려를 남겨둔다. 그리고 영화는 단순하지만 (많은 걸작들이 그렇듯이)관객들에게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관객이 끝까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홀연히 퇴장한다. 서늘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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