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리즈 <올리브 키터리지>
난데없이 왜 TV시리즈를 이야기하는지 궁금해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알고 있다. 나는 TV시리즈를 잘 챙겨보는 텔레필이 아니기에 이 작품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확신이 없다. 그리고 굳이 영화 비평의 방법론으로 TV시리즈 작품을 평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럼에도 <올리브 키터리지>를 반드시 다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작품이 내게 안겨준 감정적 여운이 진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외에도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다른 TV시리즈 작품들에 대해서도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HBO에서 제작한 <올리브 키터리지>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원작을 각색한 4부작 미니시리즈이다. 크로스비에 거주하는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인물의 삶을 따라가며 그녀가 어떻게 인생의 비극을 맞이했는지를 보여준다. 잠깐, 지금 비극이라고 했나요? 그렇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시작과 함께 그녀의 인생이 막다른 길에 내몰렸음을 보여준다. 이 시리즈는 숲에서 자살을 준비하는 올리브 키터리지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녀의 얼굴에는 삶의 모든 피로와 외로움이 묻어난다. 그때부터 시리즈는 본격적으로 그녀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며 무엇이 그녀를 여기로 데려왔는지를 알아본다. 여기까지만 읽는다면 올리브 키터리지가 선한 인물임에도 삶의 부조리에 떠밀려 죽음을 선택한다는 스토리로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리즈를 보면서 우리는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인물에게 온전히 의지할 수도, 감정적으로 투영할 수도 없다. 오히려 많은 상황에서 그녀의 주변 인물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고 그녀가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까칠하며 어떨 때는 무례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지점에서는 그녀 스스로 삶의 비극을 자초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문이 일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둘씩 그녀의 곁은 떠난다.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음의 형태로 그녀와 이별한다. 올리브 키터리지가 외로운 진정한 이유는 그녀가 고독하기 때문이 아니라 떠나보낸 관계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그녀는 타인과 호의적인 관계를 맺기에는 너무 냉소적이고 가식적인 것에는 치를 떨 만큼 솔직한 성격이다. 떠난 이들은 이 관계의 끝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그녀의 탓으로 떠넘기지만 그녀는 그것을 온전히 감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올리브 키터리지에게 감정적으로 동일시하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이입하기에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고 매정해 보인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그녀가 마지막에 처한 상황이 그녀 스스로 자초한 비극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어느 순간 그녀가 첫 장면의 장소에 와 있을 때, 그래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할 때 아무도 그 선택을 긍정하지 않을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남들보다 냉소적이고 차가워 보일지언정 끝까지 삶을 긍정하고 죽음 앞에 선 인물들을 구제하고자 했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내려고 할 때 모두 같은 마음으로 그녀의 결정을 말릴 것이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당신은 아직 살아갈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 후 그녀가 어떻게 되는지는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여기서의 핵심은 그 장면에서 모두가 진심으로 그녀의 삶을 긍정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녀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비극에 그녀 스스로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녀가 죽을 이유는 없다. 여기서 <올리브 키터리지>의 파토스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삶을 긍정하고 그녀의 존재를 긍정한다. 한 마디로 삶을 긍정하고 타자를 긍정하는 과정. <올리브 키터리지>는 우리에게 우리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타자일지라도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면서 외로운 투쟁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작은 위안을 건네준다. 당신은 충분히 소중한 사람입니다. 부디 당신의 삶을 버리지 말아 주세요.
사실 나에게 있어 <올리브 키터리지>의 가장 뛰어난 부분은 연기에 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 위대한 배우의 위대한 연기. 앞서 말한 감정적 여운 역시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반감되었을 것이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분명 할리우드 영화계에 확고한 발자취를 남긴 배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본 그녀의 최고의 연기는 영화가 아닌 TV시리즈이다. 여기에는 말 그대로 100%의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담겨있다. 차갑고 냉소적인 외면과 붕괴되고 공허한 내면의 공존. 물론 이런 종류의 연기는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자주 해온 연기이다. 하지만 그 연기가 정점에 이른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올리브 키터리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위대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올리브 키터리지>는 황홀함을 주는 작품이다. 당신이 그 경험을 함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