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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Sep 25. 2020

고난은 영웅을 어떻게 만드는가

<프리즘 오브 : 다크나이트> 中 노승훈 신부의 <거룩하지 못한 영웅>

서사적 위치에서의 영화와 사실적 종교관





노승훈 신부의 평론은 재미지다. 하지만 그가 신부라 재미진 것이 아니다. 나는 신의 존재는 믿지만 교회를 믿지 않는다. 애석하지만, 사람은 사람이라 다양하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 사람에 따라 맹목적이기도 하고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용기를 내기도 하고 비겁해지기도 한다. 도망치기도 하고 맞서 싸우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교회라는 집단보다는 신을 믿는 개인의 언어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편이다. 노승훈 신부의 언어는 영화와 신적 서사를 잇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한다. 영화와 성경을 배운 이들의 관점에서의 해석은 흥미롭고 독특하다.  SF와 미스테리 소설과 같이 있음직한 허구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입맛에 맞다. 바다를 가르는 것 이외의 '예수의 서사'(101p)와 <다크나이트>를 연결하는 모습이 새롭다. 예수와 유다의 관계는 배트맨과 하비 덴트이며 조커라는 인간이 직면하는 '고난'이라는 개념 자체라고 해석한다. 그는 '기독교의 전통적 관점'(102p)보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자들'(102p)의 해석을 참고하기도 한다. 이는 다채로운 관점에서 본다는 열린 시선과 유다를 악령에 씌인 '악마의 앞잡이'(102p)라는 해석에 기초한 것보다 신뢰성을 가진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인터스텔라> 비하인드 스토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학적이다. 심지어 SF는 허구라는 이미지가 다분하지만 물리학과 우주에 대한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집요한 연구를 거듭해 <인터스텔라>에 과학적 오류가 없도록 했다. 실제로 <인터스텔라> 제작 당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시나리오 집필을 도운 물리학자 킵 손 교수가 책을 내기도 했다. <인터스텔라의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 책을 출간한지 2년 뒤 2017년에 킵 손 교수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처럼 허구의 서사를 실제 연구를 통한 탄탄한 지식과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를 다채로운 시선이자 사실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노승훈 신부는 평론을 이어간다. 








영웅은 왜 영웅이 되는가.


고난은 영웅을 어떻게 만드는가. 그 영웅이 인간인 이상 고난은 그를 강하게 만들 수도, 혹은 이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영웅은 삶에 들어온 고통과 죄의식을 모두 자신의 사명 안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이것이 인간 배트맨이 고난을 통해 거룩한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다크나이트>는 철학적 메세지가 다분하다. '조커'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미 철학적이다. 그는 가면을 벗으며 'I believe that whatever doesn't kill you simply makes you STRANER'라고 말한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후 더욱 이상해진다는 혼돈에 대한 믿음. 이 믿음이 조커를 폭력이라는 자극적인 악당의 캐릭터라는 것을 넘어서서 이념을 야기하는 철학의 태도로 대해야 하는 이유이다 .


조커는 혼돈의 사도이다.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이다. 그럼 혼란스럽다고 모두 나쁜 것인가? 악한 것인가? 그의 악한 면모를 들여다 본다면 폭력성일 것이다. 그러나 배트맨도 폭력을 쓴다. 그럼 배트맨은 악한 캐릭터인가?  아님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노승훈 신부는 <거룩하지 못한 영웅>에서, 조커를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해석에서 깊이 들어가는 것 보다 '질서'와 '혼돈' 그리고 '고난'과 '거룩함'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한다. 신은 세상을 만들 적에 '선'을 만들려는 목적보다 '질서', 즉 '혼돈' 을 정리한 것이다.


그렇다면 영웅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고난'을 어떻게 여기느냐다.  <다크나이트> 속에서 '고난'은 조커이며 조커가 맞춰 놓은 서사를 재편집하는 순간이 배트맨이 영웅으로써 거룩해지는 순간일 것이다.영화 <다크나이트>와 노승훈 신부의 평론이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다. 우린 어디로 나아가야하는가. 우리를 작은 영웅이자 위대하며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기후 위기라는 고난 앞에서, 여성이 밤길을 무서워해야하는 고난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고난 앞에서, 동물 학대가 만연한 고난 앞에서, 돼지와 소와 양과 돌고래가 갇혀 있는 고난 앞에서, 우린 분명 작은 영웅들이 될 수 있다. 


차방 책방에서 프리즘 오브 잡지 중 절판 되었던 <다크나이트> 편과 <불한당> 편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을 기억한다. <프리즘 오브 : 불한당 편>을 먼저 읽을 적에도 노승훈 신부의 <죄의식과 절대자>라는 평론을 읽으며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영화와 종교적 시선의 연결이라는 특징도 새로웠지만 자연스럽게 영화와 종교적 세계를 연결하는 서사 측면의 평론이 구연 동화를 듣는 것처럼 바로 이해할 수 있고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프리즘 오브 : 다크나이트 편>에서도 그의 언어를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고, 왜인지 용기를 얻었고, 안심하며 굳은 어깨가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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