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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ysu Oct 06. 2020

내가 태어날 때 할머니가 태어났다.

좋은 것을 보면 할머니가 생각 나.


  누가 누가 물감을 엎었나. 에메랄드 빛 동해 바다 빼닮은 풍경화 그리려다 하늘에 엎었나. 고갤 올려다보니 나뭇잎이 울긋불긋. 노을이 물들이기 전부터 가을이 물을 들여놨나 보다. 예쁜 것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Z세대 아이들은 시초를 모른다는 수화기 모양의 아이콘을 누른다. 최근 통화 기록에, '어서 오렴'으로 저장된 할머니의 전화번호. 누르고 기다린다. 할머니는 '동원이'가 부르는 '효도합시다'를 듣게 될 테지. 더 듣고 싶어서 늦게 전화를 받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기다린다. 예쁜 것을 보았다고. 할머니가 생각났다고 말할 준비가 되었다. 성대와 목젖이 콘서트 직전의 가수의 그것처럼 촉촉하다.


  할머니가 '으잉!' 하며 전화를 받는다. 할머니 방식으로 여보세요의 애정 어린 표현이다. 널 알아보았다, 너의 전화임을 알아내었다, 기쁘구나, 전화를 주었구나, 반갑구나가 모두 포함된 '으잉!'이다. 나도 '응!' 한다. 마치 새끼 고양이와 어미 고양이가 서로를 찾으며 내는 울음소리 같다.


  할머니. 햇빛을 보니까 할머니랑 산책했던 일이 생각났어. 좋은 것을 보니 할머니 생각이 나. 나는 좋은 것을 자꾸자꾸 말한다. 많이 많이 말한다. 가을이 물들인 나뭇잎과 주렁주렁 열린 감과 감 색깔의 노을을. 노을이 질수록 화려 해지는 호수의 물빛을. 재 공사해서 푹신해진 산책로를. 상쾌한 걸음을. 할머니는 여유를 부려대는 내 말에도 최선을 다하란다. 열심히 하라고. 밥 굶지 않는 데에 온 힘을 다하고, 건강을 챙기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고 한다. 나는 순간 울컥해서, 울먹였다. 할머니는 이게 무슨 소리냐며 말한다. 울지 말란다. 아니야, 할머니. 호수에 물결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였어. 짐짓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내가 배달된 해에, 할아버지가 둘 다 죽었다. 집안에 큰 인물이 태어나면 초상이 난다지.

  -김승일, <에듀케이션> 中



  내가 태어났던 1996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유감스럽게도 기쁘다. 할머니를 때리던 못된 손을 가진 할아버지. 내리치는 손을 멈출 생각 않던 할아버지. 사람은 복잡해서 폭력적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할아버지를 정의 내릴 순 없지만, 유감스럽게도 기쁜 것은 변함이 없다. 할머니의 '으잉!'처럼 아름다운 것을 보면 할머니가 생각난다. 아름다운 것을 누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나의 할머니라서가 아니라, 김화순이라는 한 명의 여자로서. 생명으로서. 존재로서.


  알고 보니 내가 태어나던 해에 할머니도 다시 태어났더라. 할머니에게 꼭 돌아와야 하는 아름다움이 있어서. 미소(美笑)가 있어서 초상이 났더라. 할머니의 울음이 내 탄생의 울음으로 전환되고, 우리에겐 1996년의 울음과 이후의 웃음이 있었던 거야. 할머니, 할머니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난 그만 울먹이다 말을 삼켰다. 할머니가 '호수가 어쨌다고?' 한다. 호수보다 더 출렁이는 목소리로 별거 아니라며 보이지도 않을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의 말처럼 최선을 다해 손사래를 친다.




  열심히

  손사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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