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연습>이 끈적하고 후덥지근한 여름, 좁은 10평짜리 원룸에 10명이 살을 맞대고 자야 하는 것 같았다면 <무진기행>은 무진의 명물인 안개 같았다. 담배 연기로 이루어진 연기인지, 바다 안개인지, 독 안개인지 모른다. 숨은 쉬어야 하니 폐 가득 들이쉴 수밖에 없는 수수께끼의 명물. 원치 않아도 들이쉬어야 하고 헤모글로빈이 몸 구석구석 퍼져 놓을 명물이었다.
명작을 들이쉬었더니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이끼>와 숙덕거리는 마을 사람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과 어머니로 인해 자유롭지 못했던 윤희중의 과거. <밀양>과 시체에 모인 유니폼들. <아가씨>와 무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하인숙. <버닝>과 박 씨. <기생충>과 열등감과 불안.
그만큼 <무진기행>은 <버닝> 속 대마초를 하고 몽롱한 종수(유아인 역)의 얼굴처럼 나의 가치들을 모호하게 만든다.
여성 노동자 계층이자 이민 2세대임에도 하원 의원이 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의 용기와 실행력. 유대와 비극을 버무리는 미나토 가나에의 문장들. 첫맛은 다디달아 찾게 되어도 끝내 화학 맛이 나는 쿠키 같은 영화는 만들지 않겠노라 말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연출. 달리기, 하룻밤, 몸, 식단 등등 싸랑과 용기에 대한 픽션이자 논픽션을 자아내는 이슬아의 시선. 디즈니가 원하지 않아도 특유의 표현 방식을 고수한 팀 버튼의 세계관.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나아가는 나이키의 브랜드 컨셉.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행하고 따라가겠습니다. 이끌어주십시오 하고 기대하는 가치들이 순식간에 모호해진다.
안개로 던져 놓았으면 집적대질 말아야 할 텐데 자꾸 어지럽게 침범한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사이렌 소리와 강가의 시체와 안갯속에 부영 하는 비참함과 열등감의 공기. 안갯속에서도 걷겠노라 다짐해도 어찌나 결심을 가혹히 도 무너뜨리는지. 이 소설이 만약 블랙 코미디라면 지독하다. 웃지도 못하게 상처를 건드린다.
난 나만 불행한 줄 알았지. 우물에 있는 걸 깨달았는데도 울기만 했다. 자기 연민이 지독하던 시절이 있었다. 싸랑과 용기를 목격하지 않고 듣지 않고 만나지 않았던 세월. 뒷걸음친다. 개구리 시절로. 청개구리도 되지 못하고 꺼내 달라는 생각도 못하고 나갈 생각도 않던 개구리 시절로. <무진기행>을 읽고 문득 두려워져 걸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안갯속에서도 불변하는 두 가지가 있기에.
아이러니하지만 과거를 돌아보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았더니 현재의 나를 마주하게 되더라. 불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부자가 되어도, 가난뱅이가 되어도. 성인(聖人)이 되어도, 악인(惡人)이 되어도. 대마초를 피워도, 담배 하나 입에 대지 않아도. 고기만 먹어도, 비거니즘이 되어도. 직장을 얻어도, 백수가 되어도. 칼럼니스트가 되어도, 르포 작가가 되어도. 영화 평론가가 되어도, 출판사 편집가가 되어도. 완벽한 인간은 이미 인간이 아니니 불안은 사라질 리 없다. 안개처럼. 끈덕지게 피부에 스칠 것이다.
거울을 들여다봤더니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편안한 표정. <무진기행>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는 안정된 표정이었다. 용기가 샘솟았다. 정혜윤 피디가 말했듯이 나보다 더 슬픈데도 용기 내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발걸음을 떼어 걷기 시작했더니 자꾸 자주 많이 만났다. 다들 어디 숨어있었는지. 아니, 내가 찾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꾸준히 안갯속을 걷고 있었다. 누구도 비하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원하는 책임을 지면서.
혼란스러운 <무진기행>의 안갯속에서도 나의 가치는 여전하다. 불변한다. 걷는다. 선선해진 밤공기 속이든, 담배 연기 가득한 길거리이든. 네온사인 가득한 불법 주점 사이의 떨어진 여인들의 눈물을 주으러 다닌다. 밝은 대낮에 머리채가 잡힌 채 끌려다니는 아내들의 무릎에 연고를 바르러 뛰어다닌다. 편의점 테이블 위에 용기 내어 올려진 멍든 손을 잡는다. 주말 노동자이면서 글을 쓰고. 글을 쓰면서 울고. 울면서 웃으면서.